제19장
온세라는 멍해진 채 침대 시트를 꽉 잡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나는 온재혁의 개가 아니고 온씨 가문도 싫어. 외할머니를 위해 어쩔 수없이 최씨 가문에 시집왔다고.’
“왜? 고개를 젓는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최서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거친 손은 위로 올라가 언제라도 그녀의 목을 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서진이 정말 화가 났다. 이 벙어리가 집에 온 뒤부터 집안은 평안하지 못했고 이젠 이런 추악한 일도 발생했다. 벙어리일 뿐이라 우습게 여겼다.
온세라는 얼굴이 빨개졌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외할머니를 구해야 했기에 아직 죽고 싶지 않았고 또 죽을 수도 없었다.
“벌을 받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아.”
그녀가 발버둥 치는 것을 보고 최서진은 갑자기 힘을 주어 온세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온세라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말을 할 수 없어도 너무 무서워 목으로 쉰 목소리가 났는데 듣기 거북하여 혐오감을 불러일킬 정도였다.
최서진은 온세라를 안고 곧장 욕실로 들어가 넓은 욕조에 던져 넣었다.
“옷 벗어!”
온세라는 멍해졌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고개를 들던 온세라는 최서진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이 싸늘한 눈빛을 보며 어떤 설명도 창백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리던 온세라는 천천히 치마를 벗으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셔츠, 이너, 한 견지씩 벗어버린 윤세라는 몸에 브래지어만 남았다.
온세라의 몸이 최서진의 눈앞에 남김없이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존엄이 없는 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최서진은 물을 틀었다. 냉수였다.
차디찬 물이 정수리에서부터 내려와 온몸을 쓸어내렸다. 빙수처럼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온세라는 온몸을 덜덜 떨었고, 조그마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너무 추웠다!
“다시 물어볼게. 뉴스가 사실이야?”
최서진은 낮은 목소리로 냉랭하게 물었다.
온세라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추워 이까지 떨렸지만 하지 않은 일은 인정할 수없었다.
[아니에요, 사실이 아니에요.]
온세라는 온몸이 찬물에 젖어 부들부들 떨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측은해서 동정할 것이다.
최서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서진이 잠시 샤워기를 끄자 온세라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은 채 벌벌 떨었다. 조그마한 얼굴은 이미 검푸른 색을 띠었다.
“인정하면 용서해 줄게.”
최서진은 차갑게 말했다. 이것은 온세라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온세라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고 불편함을 참고 부르르 떨면서 손짓했다.
[난 하지 않았어요. 믿어주시면 안 돼요?]
최서진은 수화를 몰랐지만, 애써 부정하려는 온세라의 뜻을 보아냈다.
만약 온세라가 온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면 계속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려고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온세라가 하필이면 온씨 가문 사람이었고 또 본분을 지키지 못한 탓으로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
온씨 가문의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 또 화가 난 최서진은 재차 샤워기를 틀었다.
“인정할 때까지 여기에 서 있어.”
차가운 물은 또다시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온세라는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최서진은 뒤로 물러서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는데 얼굴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온세라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려고 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욕조에 서 있던 온세라는 정신이 혼미해져 여러 번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렇게 큰 누명을 뒤집어쓸 수 없을뿐더러 공연히 모욕을 당할 수도 없었다.
하지 않은 일을 온세라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냥 물이 아닌가!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욕실의 철썩이는 물소리에 시계를 들여다보던 최서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온세라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며 무릎을 욕조에 찧었다.심한 통증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욕조에 주저앉았다.
미간을 찌푸린 최서진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온세라가 쓰러지더라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뭔가 있을 거야.’
결국 최서진은 온세라를 욕조에서 건져내고는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 후 안고 침대로 돌아갔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간지러웠다.
온세라는 온몸이 나른해졌고 간간이 식은땀이 흘렀다.
부들부들 떨면서 이불을 꼭 껴안고 있는 온세라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턱!
누군가가 문을 힘껏 열자 그녀는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
오미숙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온세라를 쳐다보고는 그릇 하나를 던져주었다.
“대표님께서 마시라고 했어요.”
그릇에서 국물이 튀어 탁자가 범벅이 되었다.
온세라는 조용히 휴지를 꺼내 탁자 위에 쏟아진 국물을 닦았다.
이 냄새는... 생강차였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이 나는 걸 보니 역시 3급 장애인은 병신이야.”
오미숙은 욕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온세라는 오미숙의 독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간 힘을 다 해 손을 든 그녀는 생각차를 쓰레기통에 휴지를 버렸다.
생강차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경계해야 했다.
생강차를 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방문이 열리고 이번엔 최서진이 들어왔다.
온세라는 보자마자 몸서리를 쳤다.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면 모공이 얼음물에 잠긴 듯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두려웠다...
[난 모함을 당했어요.]
온세라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손짓으로 설명했다.
아쉽게도 최서진은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쌀쌀하게 말했다.
“손짓할 필요가 없어.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봐.”
온세라는 멍해졌다.
‘무슨 뜻이야?’
“옷 입어!”
이 말을 내던지고 최서진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아래층에서 기다릴게.”
최서진은 직접 차를 몰고 그녀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갔다.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 외에 그 당시의 체육 선생님도 있었다.
“대표님, 그 당시 일에 오해가 좀 있었을 겁니다.”
최서진 앞에서 교장 선생님도 이 오래된 일로 최씨 가문의 미움을 살까 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서진은 손을 들어 교장 선생님의 말을 끊었고 온세라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야?”
교장 선생님과 최서진 사이에서 온세라는 대머리 체육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고등학교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최서진 뒤로 몸을 움츠렸다.
최서진은 이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네.]
온세라는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직접 내 앞에서 똑바로 말해.”
최서진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온세라를 바라보는 눈길도 남편으로서의 정이 조금도 없었다.
보아하니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벙어리가 최씨 가문에 시집갔으니 무슨 지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