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상당히 만족해. 다만 다음에는 좀 더 강하게 나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굶은 줄 알겠어.”
강원우가 담담히 답했다.
나영민은 강원우를 싸늘하게 노려보았고 지예은과 오미나도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강원우의 행동이 하찮게 느껴졌지만 강원우는 그런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상황이 끝난 뒤 조규현은 오석훈 앞에 서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아니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오석훈은 이미 조규현에게 완전히 기가 눌려 거의 꼬리 내리고 있었다.
조규현은 그 말을 남기고선 강원우에게 불만을 품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남아있어도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강원우도 고경표와 배진호와 자리를 떴다.
허지민 일행은 강원우와 조규현 사이의 관계를 알지는 못했지만 강원우가 자리를 떠나는 걸 막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얼굴에는 의문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고경표와 배진호는 강원우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의 상황이 정말 위험천만했는데 강원우가 그걸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감동했다.
만약 당시 조규현이 약속을 어겼더라면 세 사람의 상황은 처참했을 것이었다.
조규현과 나영민이 오석훈에게 자비 두지 않고 때리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오석훈이 맞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세 사람은 당구장에서 나와 있었던 일들을 되짚었고 강원우는 외투를 당구장에 놓고 온 것을 떠올리고 고경표와 배진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며 혼자 당구장으로 향했다.
당구장에서 외투를 챙겨 나오던 강원우의 등 뒤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한테는 손대지 마. 볼일 있으면 나한테만 덤벼!”
자세히 들어보니 조규현의 목소리임을 알아챈 강원우는 호기심에 이끌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조규현과 일행이 험악한 표정을 한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상황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그중 짧은 머리를 한 남자는 손에 칼을 든 채 조규현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꽤 용감하네? 하지만 오늘 누구도 봐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어.”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규현 일행을 완전히 포위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있는 집 자식들이어서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였지만 직접 마주한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거야!”
그때 강원우가 나서며 외쳤다.
비록 조규현 일행에게 좋은 감정은 없었지만 조금 전 약속을 이행해 자신에게 도움을 줬다는 생각에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형이라는 한 마디에 뭐라도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강원우였다.
“너 누구야? 감히 나한테 소리를 질러? 죽고 싶냐?”
두 부하가 강원우 앞을 막아서며 그의 접근을 차단했다.
조규현 일행은 강원우가 나서는 걸 보고 놀랐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나설 수 있지?’
나영민은 비웃으며 말했다.
“꺼져, 네가 뭐 하러 여기서 끼어들어.”
비록 협박을 받으며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은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 구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당구장에서 형이라고 부르며 구해줬다고 정말 형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
하지만 강원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형으로서 동생이 위험에 처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따르겠어?”
지예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형이라고 몇 번 불렀다고 해서 정말 뭐라도 된 줄 아는 거야? 죽고 싶어?”
그러면서도 지예은은 강원우의 당당함에 조금은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짧은 머리를 한 마기명은 오만방자한 강원우의 태도에 화가 나 외쳤다.
“좋아. 오늘 제대로 무릎 꿇게 해주지. 얘들아, 저놈 잡아!”
이내 큰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이 먼지를 일으키며 강원우에게 달려들었고 곧이어 차례대로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너에게 전율을 느껴, 나의 모든 길을 막아줘...”
조금 전 기세등등하던 마기명도 무릎을 꿇고 그의 부하와 함께 바닥에 엎드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원우는 미소를 지으며 마기명을 한 대를 때렸다.
맞을 대로 맞은 마기명은 이미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더 크게 부르라니까. 밥 안 먹었어?”
마기명은 슬픔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흑... 너에게 전율을 느껴...”
그 모습에 조규현, 나영민, 우리 그리고 지예은 일행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원우를 바라보았다.
강원우가 마기명을 때리는 장면은 그들로 하여금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싸움도 잘하는 거였어? 당구장에서 우리가 손 쓰지 않았더라면 오석훈 일행은 더 심하게 맞았겠네?’
강원우는 그들을 가혹하게 응징한 후 마기명의 엉덩이를 한 발 걷어찼다.
그는 마치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버렸고 곧바로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참하게 도망쳤다.
강원우는 손을 툭툭 털고는 가볍게 말했다.
“이제 안전해.”
조규현 일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감격하며 말했다.
“고마워. 네가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나영민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자존심을 접었다.
“아까 한 말은 미안했다.”
우리도 흥분해서 외쳤다.
“형, 나 형 완전 존경해. 나도 열 명 상대하는 법 좀 가르쳐줘.”
그러나 강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어떻게 너희 형이 되겠어?”
이번만큼은 조규현도 강원우의 말에 화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조규현은 처음으로 거리 출신의 한 청년과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원우는 조규현이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여기서 끝내자.”
말을 마친 강원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경표와 배진호를 뒤따라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강원우가 사라지자 오미나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참나, 참외나 팔던 놈이 자기 주제를 모르네. 싸움 좀 한다고 대단한 줄 아나? 우리랑 어울리고 싶다고? 꿈 깨시지!”
“오미나, 입 다물어.”
조규현이 낮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꾸짖었다.
그 말에 오미나는 몸을 움찔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조규민과 나영민은 강원우가 왜 자신들의 호의를 외면했는지 깨달았다.
강원우의 행동에서 그는 똑똑하고 신념이 있으며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고 조규현 일행과 본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려 했지만 결국 자신을 욕보이는 결과를 맞이했다.
결국 이런 상류층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상호 이익이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강원우의 성격과 자존심을 생각하면 그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강원우는 조규현 일행에게 그들이 만족할 만한 이익을 제공할 수 없었고 무리하게 어울리려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랑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