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경기가 시작됐다.
오석훈이 먼저 큐를 들었고 그다음이 강원우였다.
오석훈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전문 훈련을 받은 그는 한때 스누커 프로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음악에 빠지면서 결국 포기했지만 그런데도 그의 실력은 아마추어 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첫 번째 샷이 실패하고 이제 강원우의 차례였다.
강원우의 자세는 매우 안정적이면서도 우아했다.
큐를 잡은 모습이 유난히 세련되어 보였고 공을 칠 때마다 맑고 청명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공은 거침없이 포켓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여자들조차 무심코 탄성을 내뱉었다.
원래 오석훈 편에 서 있던 그녀들조차도 어느새 강원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1라운드는 강원우의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
점수 차는 극히 미미했지만 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강원우는 묵묵히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오석훈에게 건넸다.
배진호가 조용히 강원우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강원우는 묵묵히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라운드부터는 달랐다.
그는 오석훈의 플레이 스타일을 완벽히 파악했고 테이블의 컨디션까지 익혔다.
2라운드는 강원우의 승리였다. 한 번에 60점까지 획득해 4만 원을 획득했고 3라운드에는 한 번에 80점까지 획득해 8만 원을, 4라운드에서는 100점을 획득해 16만 원을 그리고 5라운드에서는 120점을 획득해 32만 원을 거머쥐게 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압도적인 실력에 강원우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다.
...
키 작은 남자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분 나빠? 나쁘면 한 대 쳐봐. 다리 부러뜨려 줄 테니까.”
분노에 찬 강원우가 맞받아치려던 찰나 당구장 문이 열리며 조금 전 천전 게임을 했던 조규현과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무리의 중심에 있던 남자를 보자마자 오석훈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그는 강원우를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뛰어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규현 형, 어쩐 일이세요? 오셨으면 연락이라도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집에서 지루해 죽는 줄 알았잖아요.”
그러면서 오석훈은 그 무리 속의 여자들에게도 아부하듯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은 한없이 비굴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중 조규현과 일행의 신분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조규현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으로 그들의 지위와 신분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런 조규현에게 오석훈이 굽신거린다는 것은 오석훈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주위에 있던 여자들은 하나둘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오석훈을 통해 조규현과 가까워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강원우를 발견한 조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디서 촌티 나는 놈들이 설쳐서요. 아버지는 참외 장사하는 농부라는데 감히 겁도 없이 저한테 덤비지 뭐예요? 그래서 교육 좀 시켜주려던 참이었습니다.”
키 작은 남자도 맞장구쳤다.
“규현 형, 형도 한 수 가르쳐 주는 게 어떨까요?”
그는 조규현이 싸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때 강원우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헛소리는 다 했어?”
“뭐? 이 새끼 아직도 기세등등하네.”
오석훈이 손을 휘젓자 주위의 남자들이 강원우를 둘러쌌다.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허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석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하지만 오석훈은 허지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
“남자 일에 여자는 빠져.”
조규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담배를 꺼내 물며 강원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 했다.
“조규현, 아까 나한테 한 약속 잊었어?”
강원우가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규현이 순간 멈칫했다.
강원우의 시선을 마주친 순간 그의 눈빛 속에 담긴 냉혹한 기세가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조금 전 피시방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린 조규현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쥐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혀... 형.”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형이라는 한 마디에 모두가 경악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조규현이 보잘것없는 강원우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 순간 오석훈과 키 작은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규현의 배경을 알고 있던 여자들도 몸을 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강원우 정체가 뭐지?’
부동한 계층에 있는 두 사람에게 접점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조규현이 강원우에게 공손한 태도로 형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더욱 놀라웠다.
“형?”
오석훈과 키 작은 남자에게는 공포 영화보다 더 무서운 장면이었다.
강원우는 조규현의 행동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지만 동시에 그가 보인 가식적인 태도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조규현을 한 번 쏘아보며 차분히 말했다.
“형이라고 불렀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모욕감을 느낀 조규현은 주먹을 쥐고는 주저 없이 오석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악!”
예상치 못하게 맞은 오석훈은 깜짝 놀라며 멍하니 뒷걸음질 쳤다.
“형, 왜... 왜 저를 때리시는 거예요?”
“입냄새가 나서. 널 때리지 않으면 누굴 때리는데?”
조규현은 강원우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전부 오석훈에게 풀어버렸다.
불쌍한 오석훈은 그저 타겟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키 작은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들, 규현이 형 왜 갑자기 저러는 거예요?”
그는 조규현에게 잘 보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을 잘못 건드린 셈이었다.
조규현과 같이 있던 뚱뚱한 남자 나영민이 그 남자에게 발길질했다.
“꺼져. 아무나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
키 작은 남자는 땅바닥을 구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몇몇 여자들은 완전히 멍해졌다.
처음엔 조소와 비웃음만 보였던 그들의 표정은 이내 경외와 존경으로 바뀌었다.
‘조규현이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니...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농부의 아들이라는 배경은 그녀들에게 알 수 없는 베일로 느껴졌다.
조규현의 신분으로 시장도 그를 보면 공손히 대해야 했으니 말이다.
허지민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규현이 강원우를 형이라고 부르며 공손히 대하는 장면은 이미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 지금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조규현과 나영민이 손을 대자 오석훈과 일행은 그저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움츠린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허지민이 강원우에게 조용히 말했다.
“강원우, 그만두라고 하면 안 돼? 더 이상 놔두면 정말 큰일 날 거야.”
비록 조규현과 나영민이 왜 강원우에게 고개를 숙이는지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오석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범한 강원우의 집안이 풍비박산 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만.”
강원우의 말에 조규현과 나영민은 손을 멈추었고 오석훈과 키 작은 남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후회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강원우는 이들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그 결과는 그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조규현과 나영민은 그들을 충분히 처벌한 뒤 강원우를 향해 약간은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
“형, 이제 만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