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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임지연은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고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화가 나 얼굴이 붉어져 있는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육진우는 아무리 그래도 법적으로 인정한 자신의 아내가 슬퍼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임건국을 쳐다보았다. “오늘 아주 굉장한 경험을 하고 가네요. 임씨네 집안 사람들이 얼마나 뻔뻔했으면 자기 친아버지를 이용해 자기 친딸을 협박할 수가 있는지! 참나! 남들이 알면 비웃을까 걱정도 되지 않나 봐요.” 그는 턱을 치켜올리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임건국은 더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오늘 이 남자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임지연하고 황인호의 혼사는 무사하게 진행이 되었을 건데 말이다. 그는 육진우를 향해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너 까짓게 뭔데 우리 집안일에 참견이야! 너 같은 애들 내가 수도 없이 만나봤어! 임지연하고 결혼해서 뭐 어느 부잣집에 빌붙었다고 여기나 본데 까놓고 말하게. 임지연은 우리 집안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그의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같이 임지연의 마음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마지막 가족애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육진우는 뭐라 말하려 했으나 임지연은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쓴웃음을 보였다. “그만해요. 돌아가요.” 지금은 임건국이 그녀를 황인호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마음을 굳혔으니 육진우가 설령 그녀를 대신해 나선다고 해서 이득을 보지도 못할뿐더러 화를 자초하게 될 수도 있다. 육진우는 아무 말 없이 임지연을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못 돌아가! 오늘 당장 가서 이혼해!” 임건국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황 대표가 널 엄청 마음에 들어하고 있어. 내 말대로 순순히 가서 이혼을 하게 되면 황 대표도 널 받아줄 거야.” 임건국은 머릿속에 온통 자기 이익밖에 없었다. “이혼을 하려고 해도 한 달 동안의 진정 기간이라는 게 있어요. 적어도 한 달은 기다리셔야 해요.” 임지연은 목소리를 가누고 답했다. “그럼 일단 내일 나하고 같이 황 대표한테 가서 사과해. 오늘 일은 다 이놈이 제멋대로 들이닥쳐서 벌어진 해프닝이니까 결혼식부터 치르자고 하면 되잖아. 한 달 뒤에 다시 황 대표랑 혼인 신고하는 거야.” 뒷일까지 모두 계획을 세워놓은 임건국은 그제서야 표정이 누그러졌다. 거절하는 말을 내뱉지 않은 임지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할아버지는....”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임건국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지연아, 방금은 홧김에 내뱉은 말들이었어. 어찌 됐던 내 아버진데 어떻게 그런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수가 있겠어.” “그래요. 그럼 이 사람 배웅하러 가볼게요.” 이 집안에 철저히 실망하게 된 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임건국은 그녀가 자신의 말들에 반항하지 않자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임지연은 육진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입구에 다다르자 발걸음을 멈춘 육진우는 임지연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정말 그 남자한테 시집가게요?” 임지연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이 준수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을 딱히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고 분명 한 번밖에 만나지 않은 낯선 사람인데 법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아니요. 다만 지금 바로 거절해 버리면 임건국이 할아버지한테 해코지할까 봐 그래요. 어차피 이혼 냉각기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이 정도 시간이면 제가 알아서 할아버지를 편히 모실 수 있을 거거든요.” 임지연은 종래로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일이라 하면 그 누구도 강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임지연의 답을 듣고 나자 육진우의 표정도 어느 정도 편안해졌다. “지금은 법적으로 저희가 부부 사이니까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줘요.” 임지연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육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요. 이 일에 그쪽을 끌어들인 게 제 잘못이에요. 그쪽은 그냥 모델이고 황씨네 가문은 해성시에서 유명세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괜히 잘못 건드렸다 그쪽의 일자리마저 잃게 하고 싶지 않아요.” 육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정말 모델로 보이나? 육진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대체 왜 제가 술집 모델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임지연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잘못 짚은 건가? “술집에서 제가 돈으로 그쪽을 산 거잖아요. 아니에요?” 그래서였구나... 육진우는 미세한 미소를 띠며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서로 돕는 셈 치죠. 며칠 뒤에 할머니가 해성시로 찾아올 거예요. 워낙 몸이 편찮으신 분이라 가장 큰 소원이 제가 장가를 가는 거거든요. 지연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육진우의 답을 듣고 나자 임지연도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때 가서 저한테 연락해요. 시간 내서 나오도록 할게요.” 애초에 육진우가 단번에 승낙했었던 이유가 바로 할머니 때문이었구나... “그럼 내일 어떻게 할 셈이에요?” 육진우는 계속하여 물어보고 있었다. 임건국의 생각대로라면 내일 임지연을 데리고 황씨네 가문에 사과를 하러 갈 심산인 것 같은데 황인호의 도둑놈 상판대기 같은 꼴을 보고 나니 그는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 임지연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같이 가보는 거죠. 저도 다 생각한 바가 있으니까 저 사람들의 계략이 저한테 통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지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황인호를 거절하면 임건국이 정말로 할아버지를 내뽗는 정신 나간 짓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니 내일 홍문연이라는 걸 알지라도 그녀는 반드시 가야만 한다. 육진우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지연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지친 태도를 보였다. “가세요.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임지연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육진우는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발걸음을 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할 말 있어요.” 발걸음을 멈춘 육진우는 고개를 돌려보니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임시월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준수한 외모를 지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에 수줍음이 묻어났다. 고상준의 자상함에 비하면 눈앞에 이 남자는 경이로울 정도로 준수한 외모라 첫눈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상준을 뺏어가면 임지연을 철저히 발밑에 밝아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임지연은 대체 어디 가서 이런 남자를 찾은 걸까? 외모만으로 따져놓고 보면 정말 나무랄 데가 없다! 임시월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허리를 폈다. “돈 때문에 임지연하고 결혼했다는 거 알아요! 근데 임지연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촌뜨기예요. 몸에 지닌 돈도 없고요. 돈이 필요한 거면 다른 사람 소개해 줄게요.” 임시월의 암시에 얇은 입술을 살짝 치켜올린 육진우는 빈정거리는 어조로 답했다. “그래요? 소개해 줄 분이라도 있는 건가요?” 고상준하고 약혼을 앞두고 있는 임시월은 자기하고 만나보자는 요청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명함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제가 임지연보다 훨씬 예쁘고 돈 많은 애들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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