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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녀는 끝까지 시선조차 안 줬다. 여느 때보다 홀가분한 말투에 박도하는 소파 옆에 서서 음침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차윤서는 정말 변했다. 전에는 박도하가 조금만 아파도 누구보다 걱정해줬는데 지금은 꼭 마치 낯선 이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아직도 그날 노을 보러 갔다가 먼저 왔다고 삐진 걸까? 박도하는 언짢은 마음에 미간을 구기고 더는 이 일을 따져 묻지 않았다. “가서 옷 갈아입어. 이따가 가족 모임 있으니까 함께 가.” 차윤서는 그제야 시선을 올렸는데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더 많았다. 결혼 생활 3년 동안 이 남자는 대충 혼인신고를 올린 것 외에 그녀에게 딱히 해준 게 없다. 결혼식도, 양가 부모님 만남도 없었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박씨 일가 가족 모임까지 단 한 번도 그녀를 데리고 나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차윤서도 얼떨결에 알게 됐는데... 두 사람의 결혼 1주년 기념일에 어떻게 보낼지 물으려고 할 때 문득 부모님과 통화하는 걸 엿듣게 되었다. “도하야, 이제 결혼한 지 1년도 다 됐는데 언제 우리한테 윤서 보여줄래? 대대로 물려받는 집안 보물도 다 준비해뒀단 말이야. 차씨 일가가 그리 큰 가문은 아니지만 네가 송이나를 잊을 수만 있다면 그거로 됐어.” 문을 사이에 두고 시부모님 목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곧이어 박도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대충 결혼한 거니 만나실 필요 없어요.” 이 한 마디에 그녀를 향한 박도하의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화기 너머로 최수진이 계속 물었다. “아직도 이나 못 잊었어? 결혼만 하면...” “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돼요.” 최수진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고 문밖의 차윤서도 온 적 없던 것처럼 조용히 떠나갔다. 그해 차윤서는 박씨 저택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고, 또 이제 와서 박도하가 줄곧 찾던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이 타이밍에 부모님을 만나겠다고? “됐어.”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박도하의 제안을 거절했다. 마침내 박도하도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대체 왜 이래? 왜 자꾸 거절이냐고? 전엔 안 그랬잖아!” 점점 흥분하는 그의 말투에 차윤서도 깨달았다. 전에는 얼마나 고분고분했던 걸까? 그녀는 한참 침묵한 후 계획이 들통날까 봐 그와 함께 저택에 돌아가기로 했다. 별장과 저택은 그리 멀지 않아서 차를 타고 금방 도착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유리창 너머로 송이나가 보였다. 그녀는 한창 박형석, 최수진 부부와 함께 신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수진은 초록색 팔찌를 그녀에게 착용해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이 광경을 지켜본 박도하가 나직이 해명했다. “이나랑 우리랑 집안 대대로 알고 지낸 사이라서 가족 모임에도 늘 초대했어...” 은근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폈는데 이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신발을 갈아신고 입꼬리를 올렸다. “해명할 필요 없어.” 그녀가 이런 반응일 줄은 미처 몰랐던지 박도하의 눈가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이때 마침 송이나가 다가왔다. “도하야, 아줌마, 아저씨가 너더러 서재로 가보래.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어.” 그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차윤서와 함께 서재로 향했는데 별안간 송이나가 가로챘다. “너 혼자 오라고 하셨어.” 박도하는 마지못해 서재로 들어갔고 이때 송이나는 한껏 자랑하듯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 “이거 뭔지 알아요? 박씨 일가에서 대대로 물려받는 보물이래요. 방금 아줌마가 직접 해주셨어요.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도하도 마음이 놓인대요. 이게 벌써 몇 년째예요, 도하가 줄곧 날 좋아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니까요.” 송이나는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일말의 괴로운 표정이라도 캐치하고 싶어서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윤서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고 팔찌도 대충 보고는 시선을 옮겼다. “그걸 진짜 몰랐다고요?” 문득 차윤서가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네?” 송이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멍하니 넋을 놓았다. “도하 씨랑 소꿉친구로 커왔는데, 도하 씨가 이나 씨 쳐다볼 때마다 그 애틋한 눈빛을 숨길 수 없었는데 정말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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