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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순간 룸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놀란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차윤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박도하마저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한참 후에야 누군가가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이 게임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모임이 곧장 끝났다. 박도하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퇴장했지만 차에 타자마자 그녀를 째려봤다. “방금 그 대답 뭐야?” 차윤서는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박도하가 먼저 가로챘다. “아직도 내가 함께 노을 안 봤다고 삐진 거야?” 그녀는 그제야 알아챘다. 이 남자는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여기고 있다. 단념할 거란 생각은 전혀 없고 또 그래서 방금 한 말도 홧김에 내뱉은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지 뭐. 차윤서가 아무 말이 없으니 이 남자도 묵인한 거로 여기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한참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날씨가 별로야. 나중에 또 노을 보러 가자.” 차윤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둘 사이에 나중은 없으니까. 차가 곧장 박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다. 박도하는 다 씻고 그녀 옆에 누워서 자연스럽게 안아주려고 했는데 또 한 번 거절을 당했다. “괜찮아. 이제 심장 소리 안 들어도 혼자 잘 수 있어.”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듣고 해탈이라 여겼을 텐데 요즘은 연이어 두 번을 거절당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가 다짜고짜 키스를 퍼부으려 하자 차윤서가 머리를 피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피곤해. 이만 자자.” 늘 거만하기만 하던 부영 그룹 대표 박도하는 여자들의 구애만 받아오다가 오늘 줄줄이 거절만 당하고 있으니 기분이 확 잡쳤다. 그는 차윤서를 등지고 누워서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다음날 박도하는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갔고 차윤서는 부상 때문에 집에서 휴식했다. 점심을 먹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는데 박도하의 비서 정지민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로 정지민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대표님 지금 심장이 아픈데 회사에 둔 약을 다 드셔서 지금 바로 보내올 수 있을까요?” 사실 정지민은 오늘 처음 차윤서에게 약 심부름을 시킨 게 아니다. 전에는 그가 말하기 전에 차윤서가 알아서 약을 챙겨 갔고 박도하가 심장이 아플 때마다 누구보다 걱정하며 그를 향한 사랑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분하게 말을 듣고 있었다. “별장에서 회사까지 너무 멀어요. 혼자 나가서 사 와요.” “네?” 그녀가 거절할 줄이야? 정지민은 난감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저는 어떤 약을 사야 할지 몰라서... 전에 항상 사모님이 보내오셨잖아요. 대표님 심장이 아플 때마다 누구보다 걱정해주셨는데...” 정지민이 중얼거릴 때 그녀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이제 그럴 일 없어요.” 더없이 확고한 말투에서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약명을 몇 개 말한 후 정지민에게 알렸다. “지민 씨가 대표님 비서잖아요. 앞으로 이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요.” 전화를 끊은 후 정지민은 노트한 약명대로 부하 직원을 시켜서 약국에 다녀오게 했다. 저녁 무렵 박도하가 별장에 돌아왔을 때 차윤서는 한창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나 오늘 심장 아픈 거 몰랐어?”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지만 차윤서는 TV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알아.” 박도하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근데도 안 와?” “말했잖아. 너무 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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