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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녀의 목소리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장내에 있던 모든 이는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바로 이때 또다시 문이 열리고 박도하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과 물에 흠뻑 젖은 차윤서를 본 순간 그는 미간을 구기고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이 남자가 차윤서 때문에 화를 다 내다니?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누군가가 아양을 떨면서 해명했다. “왜 그래, 도하야? 우리 그냥 윤서한테 장난 좀 친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장난을 이딴 식으로 쳐?” 박도하는 친구들의 해명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고 이 상황이 가장 당황스러운 건 아무래도 차윤서였다. 몇 년간 박도하가 그녀에게 쌀쌀맞게 대하니 친구들도 덩달아 놀려줬을 뿐이고 이제 이런 능멸과 괴롭힘에 적응이 다 됐는데 뜬금없이 편들어주는 건 왜일까? “네가 항상 그리워하던 사람이 마침 돌아왔잖아. 윤서가 자리를 내줘야...” 누군가가 실실거리면서 이 일을 흘려 넘기려 할 때 박도하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닥쳐!”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들을 무시한 채 그녀를 데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는데 마침 송이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떠나가려는 박도하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대뜸 입을 삐죽거렸다. “도하야, 게임하다 말고 어디 가? 나 이제 막 귀국해서 간만에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데 그냥 가게?” 순간 박도하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단호하게 차윤서를 데리고 나가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윤서야, 좀 더 버틸 수 있겠지?” 차윤서는 고개를 숙이고 저 자신을 내려다보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옷은 이미 흠뻑 젖었고 이마가 피범벅이 되었는데 좀 더 버틸 수 있겠냐니? 이제 더는 그와 따져 물을 여력조차 없었다. “그래, 괜찮아.” 박도하는 무슨 큰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숨을 돌리고 소파에 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얼른 그와 송이나를 둘러쌌다. 뭇사람들은 좀전의 진실게임을 이어갔는데 첫판부터 박도하가 걸렸다. “도하 넌 처음 마음 설렜을 때가 몇 살이었어?” 누군가는 그와 송이나를 번갈아 보며 뻔한 대답을 기다렸다. “열다섯.” 차윤서는 문득 자료에 적힌 숫자가 떠올랐다. 송이나가 박씨 저택 이웃으로 이사 왔을 때가 마침 박도하가 15살 되던 해였다. 운이 안 따라줬던지 남은 두 판도 죄다 박도하만 걸렸고 질문 수위가 점점 세졌다. “도하 첫 몽정은 몇 살 때?” “열일곱.” “그럼 그 대상은 누구?” 이 질문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박도하는 뜬금없이 침묵했다. 벌주를 마시려던 참인데 누군가가 그의 손을 꾹 짓눌렀다. “에이, 이름까지 좀 그렇다 싶으면 이니셜만 말해도 돼!” 차윤서는 옆에 앉아서 묵묵히 그를 지켜봤다. 이때 박도하가 술잔에서 손을 떼고 나직이 말했다. “S.” S는 영락없이 송이나였다. 뻔한 대답에 모두가 알겠다며 왁자지껄했고 송이나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바탕 떠든 후 송이나가 머리를 들고 살짝 거만한 표정으로 차윤서를 바라봤다. “윤서 씨 혼자 거기서 안 심심해요? 같이 놀아요!” “그래, 같이 놀자, 윤서야.” 차윤서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고 뭇사람들은 다시 게임판을 벌렸다. 이번엔 마침 차윤서가 걸려들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질문을 기다렸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어?” “에이, 질문이 너무 쉽잖아!” “그러게 말이야. 이 바닥에서 차윤서가 우리 도하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또 있냐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질 때 차윤서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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