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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녀는 박도하를 등지고 누웠다. 움츠리고 누운 그녀의 자세가 달빛에 드리워지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차윤서는 오늘 처음 이 남자의 품을 거부했다. 애초에 그녀를 좋아한 적 없으니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왜 이렇게 공허하고 마음이 헛헛할까? 그동안 그녀를 품에 안고 자는 게 습관 돼서 그런 거겠지... 박도하는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차윤서는 조금 늦게 깨났지만 세안을 마치고 아래층에 내려오니 의외로 박도하가 집에 있었다. “오늘은 송이나 씨 보러 병원 안 가?” 예전 같으면 귀찮고 짜증 날 텐데 오늘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어젠 이나 때문에 질투한 거야!’ “이나랑은 단지 친구 사이야. 애가 귀국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해서 좀 더 신경 썼을 뿐이야. 이제 퇴원해서 병원 안 가봐도 돼.” 박도하는 열심히 해명에 나섰다. “전에 노을 보러 가자며? 요즘 줄곧 바빠서 함께하지 못했네? 보상으로 오늘 함께 가줄게.”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애초에 사람을 잘못 알아봤고 이제 이혼까지 했으니 더는 그와 함께 이런 무의미한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막 거절하던 참인데 박도하가 글쎄 제멋대로 스케줄을 다 잡고 기사님까지 집 앞에 도착했다. 차에 탄 차윤서는 머리를 텅 비우고 묵묵히 창밖을 내다봤다. 그들의 차는 교외로 질주했고 곧이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산 정상에 이르자마자 박도하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 화면에 띈 [이나]라는 두 글자가 얼핏 보였다. 상대가 뭐라고 말했는지 통화를 마친 후 박도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차를 타고 이 한마디만 남긴 채 떠나가 버렸다. “금방 데리러 올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이 남자는 그림자조차 안 보였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졌어도 좀처럼 오지를 않았다. 산에서는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 다만 그녀는 박도하에게 연락해 언제 오는지 묻지도 않고 묵묵히 하산했다. 가파르고 높은 산길을 따라 내려왔더니 발에 물집까지 생겼다. 이제 그만 우버를 불러서 별장에 돌아가려던 참인데 마침 박도하의 친구한테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급한 일이야. 맨홀로 와, 당장!] 사실 박도하의 친구들은 찌질한 그녀를 얕잡아보기가 일쑤였다. 2년 동안 겨우 들이대서 박도하와 결혼에 골인했으니 형수님 대접도 안 해주고 먼저 연락 온 적은 거의 없었다. 문자를 확인한 차윤서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고 클럽 맨홀로 출발했다. 박도하가 걱정돼서라기보단 이 기간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이혼에 영향을 미칠까 봐 얼른 달려갔다. 하지만 보내온 주소대로 룸에 들어섰더니 발아래에 놓인 밧줄에 걸려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걸상에 머리를 부딪친 그녀는 너무 어지러워 이마를 문질렀는데 별안간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초라한 몰골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출 줄 모르고 기세를 더해서 찬물까지 끼얹었다. 문이 닫힌 순간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차윤서가 물세례를 당했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하하, 얘 좀 봐. 거지 같지 않냐?” “승재 너 대박이다. 비유 찰지네.” 룸 안에서 뭇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그녀를 놀려댔다. 룸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더니 축축하게 젖은 옷에 찬바람이 스며들어 저도 몰래 몸을 파르르 떨었다. 머리끝으로 흘러내린 물방울에 시야가 흐릿해지고 마침내 그들의 꼼수에 넘어간 걸 알아챈 차윤서는 덤덤하게 얼굴을 쓱 닦았다.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들 지루했던지 더 자극적인 걸 꺼내 보였다. 누군가가 휴대폰을 꺼내고 영상을 하나 틀었는데 마침 차윤서가 고개를 들었을 때 화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 찌질이, 도하 첫사랑 돌아왔어. 그거 알려주려고 여기까지 너 불러온 거야.” 다른 방에서 찍은 영상인 듯싶은데 박도하가 한창 쪼그리고 앉아서 한없이 자상한 표정으로 송이나의 발목을 문질러주고 있었다. “봤어? 도하 오늘 이나 때문에 널 버려둔 거야. 이나가 발목 한번 접질렸다고 금방 달려오잖아. 너 같은 애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서비스지! 여기서 사모님 자리나 차지하지 말고 눈치껏 물러나. 내쫓기는 것보단 훨씬 보기 좋잖아.” 박도하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야유를 퍼부었고 차윤서는 꿋꿋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의 고통을 꾹 참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 마. 알아서 물러날 테니까. 왜냐하면 나도 박도하 별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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