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에:: Webfic
제3장 결혼 취소
강유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스티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그 스티커가 마치 민연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듯했다.
차가 멈추고 나서야 강유나는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렸다.
출장 다녀오더니 장모님이라고도 부르기조차 꺼려하네.
...
진영재는 시간을 아주 잘 지켰다.
오전 10시, 그는 시간 맞춰 병실에 나타났고, 어제의 차가움은 사라지고 말이 안 될 정도로 젠틀해 있었다.
"몸은 어때요?"
진영재는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고급 영양제를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았다. 그가 더운 듯 소매를 걷고 단단한 팔뚝을 드러내고는 옆에서 의자를 끌어와 아주 안정적으로 김선영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가 오자 김선영은 아주 기뻐하며 마른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영재가 바쁜 일 끝내면 날 보러 올 거라고 했잖아, 이 놈의 계집애가 네가 바빠서 시간 없다는 거야."
김선영은 말을 마친 후, 못마땅하게 강유나를 노려보고는 다시 진영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살짝 아부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영재야, 요즘 안 보이던데, 많이 바빴어?"
진영재는 강유나를 힐끗 보았는데 그녀가 가만히 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뵈러 와야죠."
강유나는 그가 무심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진영재가 너무 가식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김선영은 그의 말에 오히려 얼굴을 밝게 피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겉보기엔 완벽한 모자 관계 같았고, 진영재가 착한 아들의 모습을 하면서, 대답도 명확하게 하면서 친절하게 대했기에 김선영이 병으로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이건 강유나가 평소에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옆에서 가만히 있었고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김선영의 눈에는 그녀가 정말 멍청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자 김선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했다.
"저것 봐, 저 답답한 성격 좀 봐, 정말 어려서부터 환심을 살 수가 없다니까. 영재 네가 착해서 그렇지, 안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아무도 안 데려갈 거야."
그러면서 표정이 일그러져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동생보다 못해, 쟤 남동생이 살아 있었으면..."
옛일을 꺼내자 강유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진영재의 앞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게 제일 싫었다.
그녀는 거의 애절하듯 씁쓸하게 말했다.
"엄마, 하지 마세..."
아들 생각이 나자 김선영은 아주 속상해했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때 네가 아니었으면..."
"장모님."
진영재는 미간을 찌푸렸고 적절한 타이밍에 말했다.
"한참 말씀하셨는데 목마르시죠?"
그의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기에, 김선영은 그 힘에 눌려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부들거리며 진영재의 손에서 컵을 받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강유나를 표독하게 노려보았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진영재가 제일 먼저 분위기를 깨트렸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는 긴 손가락으로 칼을 잡고는 익숙한 듯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요즘 몇몇 해외 기업을 인수했어요. 아마 시가총액이 꽤 상승할 겁니다. 이제 진씨 가문이 손해 볼 일 없이 좋은 해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사과를 잘라 그릇에 담았다.
"몸 괜찮아지시면, 해외로 쇼핑이나 가시죠."
진씨 가문의 자산은 해외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지난 몇 년 간 가족 간의 내분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그 결과 많은 사업들이 연이어 실패하며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그때 진영재가 나서서 회사를 재정비했기에 오늘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김선영은 진영재가 유능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가총액이나 주식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씁쓸하게 웃더니 자조하며 말했다.
"난 그런 팔자가 없어, 못 누릴 것 같아."
그녀는 멈칫하고는 바로 이어 말했다.
"영재야, 난 여기까지인 것 같아, 내 딸이 제일 걱정이야."
진영재도 그녀의 말을 알아챘고 김선영한테 기회를 주지 않고는 바로 말을 끊었다.
"걱정 마세요."
그는 김선영의 마른 손을 잡고 묵직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좋은 사람이라 복 받을 겁니다, 꼭 무사할 겁니다."
사실 진씨 가문에서 이미 후속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영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했고, 김선영한테 결코 기회를 주지 않았고 강유나와의 결혼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진영재는 이유를 대고 가려고 했고, 김선영은 더 잡을 핑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강유나한테 바래다주라고 했다.
강유나는 불만이 많았지만 김선영의 성화를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묵묵히 진영재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병실을 나서서, 모퉁이를 돌자 진영재가 갑자기 멈춰 섰다.
"강유나."
그가 이름과 성까지 다 부르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간을 찌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강유나는 멈칫했고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래, 조심해서 가."
하지만 진영재는 비웃음을 터뜨리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강요된 결혼은 정말 재미없어."
강유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라 진영재의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결혼 취소하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면 뭐겠어?"
진영재의 눈빛은 아주 싸늘했다.
"내가 왜 형이 갖고 놀았던 여자랑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