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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강기준은 얇은 입술을 싸늘하게 굳히며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정라엘, 당장 돌아오지 못해?” 정라엘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들어오라면 들어가야 해? 이미 이혼했는데 누가 당신 비위를 맞춰주겠어!” 강기준은 이를 악물고 씩씩거렸다. “이혼 사유에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다시 써!” 정라엘은 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당신이 깨어난 지도 벌써 반년은 됐잖아. 근데 그동안 내 손 한 번 안 잡았지. 3년 동안 식물인간이었던 것 치고 지금 몸 상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난 당신 남성적 기능이 고장 났을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혹시 이제 안 되는 거 아니야? 빨리 용한 한의사라도 찾아가 봐.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야. 빨리 나아서 남성 호르몬을 되찾길 바랄게!” “...” 강기준은 이마의 핏줄이 부글부글 뛰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 여자가 정말 분수를 모르고 날뛰네!’ “정라엘, 너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야!” “미안한데 그럴 기회는 없어.” “정라엘!” 뚜뚜... 정라엘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기준은 아직 폭발도 하기 전이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끊긴 신호음에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 ‘정라엘!!!’ 정라엘은 이미 서다은의 아파트에 와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서다은이 소리 내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라엘아, 정말 잘했어. 지금쯤 강 대표 완전 피 토하고 있을걸?” 정라엘은 예전에 자신이 너무 자세 낮춰 사랑했던 탓에 강기준이 거만해졌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 특히 여자는 더욱 그래야 한다. 서다은이 말했다. “3년 전 정아름은 강 대표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도망갔잖아. 근데 강 대표가 기적처럼 깨어나선 또 걔를 찾아간 거고... 그런 남자는 이혼이 답이야!” 정라엘은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한 맛이 마음속 씁쓸함을 살짝 덮어주는 느낌이었다. “다은아, 이게 사랑받는 쪽이랑 아닌 쪽 차이인가 봐.” 사랑받는 쪽은 늘 당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쪽은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서다은은 정라엘이 어느새 사탕을 잔뜩 먹은 걸 보고 그녀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라엘아, 기운 내. 나무 한 그루 포기하면 숲을 얻는다잖아? 오늘 밤 내가 선수 여덟 명 불러서 네 싱글파티 열어줄게!” 정라엘은 이마를 짚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서다은이 손을 뻗어 정라엘 얼굴에 있던 커다란 검정테 안경을 확 벗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야, 내 안경이잖아.” 정라엘이 주우려 하자 서다은이 막으며 말했다. “너 연구하느라 맨날 이 안경만 끼지. 이제 정아름 좀 본받아서 예쁘게 꾸미고 다녀!” 정라엘은 예전에 부모가 자신을 못난 오리라고 부르며, 정아름은 백조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 강기준 눈에도 그녀는 늘 못난 오리였을 것이다. 서다은은 정라엘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가자. 나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며야지. 강기준 그 인간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네가 얼마나 예쁜 여자인지 보여주자!”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서다은이 말했다. “아, 맞다. 라엘아, 이혼하면서 정말 강 대표 돈은 하나도 안 받는 거야?” “나 돈 있어.” “그럼 강 대표 돈은 정아름 보고 쓰라고 냅두는 거네? 정아름이 참 고마워하겠네.” “...” “근데 너 강 대표가 준 카드 있지 않아?” 강기준은 손이 큰 편이라 정라엘에게 블랙카드를 한 장 줬다. 하지만 정라엘은 써 본 적이 없었다. 정라엘은 가방에서 금빛이 도는 블랙 카드를 꺼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내가 마음껏 쓰고 결제는 강 대표가 해주는 거지 뭐.” ... 밤, 이븐 클럽. 이븐 클럽은 줄곧 로운시 최고의 돈 낭비 장소로 유명했다. 수많은 제벌이 이곳에 모여 돈을 펑펑 썼다. 오늘 밤도 DJ가 정신없이 음악을 틀며 광란의 무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 호화로운 중앙 자리에는 강기준이 주인처럼 앉아 있었다. 오늘 그는 검은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를 매치했고, 셔츠 소매를 두어 번 걷어 올려 단단한 팔뚝과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드러냈다. 잘생기고 우아한 기품이 어우러져 클럽 안에 있는 여자들이 수시로 돌아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강기준 옆에는 그의 절친인 고승호, 즉 고씨 가문의 후계자도 함께였고 주변에는 또 다른 재벌 2세들이 모여 있었다. 고승호가 큰 소리로 웃었다. “형, 정라엘이랑 이혼한다더니 그게 진짜야?” 주변 재벌 2세들도 깔깔거리며 맞장구쳤다. “다들 알겠지만 정라엘은 강 대표님을 뼛속까지 사랑했잖아. 강 대표가 식물인간이었을 때도 기꺼이 시집간 애라며. 그런 애가 어떻게 이혼을 견디겠어?” “우리 내기할래? 정라엘이 며칠 만에 다시 기준이를 찾을지.” 고승호가 거들었다. “난 오늘도 못 넘길 거라고 봐. 조금 있으면 형한테 메시지 보낼걸?” 하지만 강기준의 얼굴엔 음침하고 날 선 기색이 감돌았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정라엘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대화는 어젯밤이었다. 정라엘이 커다란 사골국 사진을 보내면서 말했다. [기준 씨 골밀도가 정상이 됐다 해도 몸보신해야 해. 일찍 들어와.] 그 위로 올라가 보면, 전부 정라엘이 매일같이 보낸 문자들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주 조용하다. 그녀가 아무 말도 보내지 않았다. 강기준은 괜히 속이 답답해졌다. 띵. 그 순간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곁에 있던 고승호가 신나서 외쳤다. “내 말 맞지, 형? 정라엘이 메시지 보낸 거잖아!” 띵. 띵. 띵. 연달아 여러 건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변 재벌 2세들이 폭소했다. “역시 못 참고 달려드네. 한 번 터지니까 막 쏟아지는데?” 고승호가 재촉했다. “형, 얼른 봐. 정라엘이 뭐래? 분명 울면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거 아니야?” 강기준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침까지 큰소리치더니, 결국 이럴 거면... 처음부터 곱게 말할 것이지.’ 그는 메시지를 열어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 고승호가 흘끗 보고 읽어 내려갔다. [0975 승인 160,000원(일시불) 글로리 네일] 사람들은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강기준은 위로 더 스크롤 했다. 미용실 40만 원, 샤넬 2000만 원, 루이뷔통 5000만 원... 죄다 소비 알림만 잔뜩하고 화해나 이혼 번복 따위는 없다. “...” 마치 정라엘이 저 먼 곳에서 그들을 후려갈기듯 묘한 굴욕감만 스쳤다. 강기준은 얼굴이 파래지며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금액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혼하자마자 이렇게 신나게 소비를 즐기고 있는 그녀가 거슬렸다. 3년간 순종적이던 여자가 갑자기 발톱을 드러낸 느낌이었다. 고승호가 중얼거렸다. “형, 정라엘 이거 뭐 하는 거지? 손톱에 머리에 옷 막 사들이고... 설마 정아름 흉내 내는 거야?” “정아름은 로운시의 장미잖아. 정라엘은 시골에서 온 촌뜨기고. 아무리 치장해도 안 통해.” “백조는 백조고, 오리는 오리지. 미운 오리새끼는 영영 백조가 될 수 없다고.” 사람들은 정라엘을 비웃으며 술을 마셨다. 바로 이때 이븐 클럽 안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더니 누군가가 감탄했다. “야, 저기 봐! 완전 천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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