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정라엘은 귀에서 윙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남자를 하나 아니면 둘을 찾아주겠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는 이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정아름을 선택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심장을 깊숙이 찌르고도 끊임없이 뒤틀며 피와 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
정라엘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어렵게 목소리를 내었다.
“기준 씨, 그래도... 난 아직... 기준 씨 아내잖아.”
강기준은 새까만 셔츠와 바지를 깔끔하게 갈아입고 조금 전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 상태였다.
이제 그는 다시 냉정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곧 강기준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너에 대한 보상이야.”
내려다보니 그것은 0이 10개나 찍힌 거액의 수표였다.
그 순간 머리 위로 강기준의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엘아, 이건 내가 주는 이혼 위자료야. 우리 이혼하자.”
강기준은 거액의 수표를 세면대 위에 내려놓고 뒤돌아 큰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정아름한테였다.
몇 년 전 엄마처럼, 강기준은 똑같은 선택을 했다.
정라엘의 창백한 얼굴이 붉게 물들며 눈에는 맑은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또다시 버려졌다.
엄마에게도, 강기준에게도 그녀는 매달리고 붙잡으려 애썼지만 그들의 사랑은 모두 정아름을 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
곧 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이 보내신 사람입니다. 사모님을 찾으러 왔는데 사모님은 어디 계신가요?”
그러자 오영자가 대답했다.
“사모님은 침실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오영자가 그 남자를 데리고 방으로 다가왔다.
정라엘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기준 씨가 보낸 남자가 이렇게 빨리 왔다고?’
그녀는 헛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조롱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네.’
뚜벅, 뚜벅, 뚜벅.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문 앞에 멈췄다.
정라엘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이곳은 2층이었다.
뒤이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풀밭 위로 떨어지자마자 발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뼈를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엉망이 된 몸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서다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전화가 연결되자 서다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야? 집에도 안 들어오고 대체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서다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라엘의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뜨겁고 쓰라린 눈물이 끝없이 떨어졌다.
...
이븐 클럽.
정아름은 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은 약 기운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모습이 더욱 매혹적이었다.
한 건장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제 곧 30분 지나요. 남자친구 안 오는 거 맞죠? 오늘 밤 그쪽은 내 겁니다.”
하지만 정아름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핸드폰 속 카운트다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왜 그렇게 서둘러요? 아직 5초 남았거든요? 5, 4, 3, 2, 1...”
마지막 ‘1’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남자의 손이 갑자기 한 길고 단단한 손에 의해 붙잡혔다.
그리고 단숨에 비틀어졌다.
“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정아름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기준이 도착해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바람과 함께 차가운 서리가 내린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강기준은 한 손으로 남자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남자는 바 테이블에 세게 부딪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정아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팔에 손을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봐요, 제가 뭐랬어요? 제 남자친구는 꼭 올 거라고 했잖아요!”
그녀는 확신했다.
자신과 정라엘 중, 강기준은 언제나 자신을 선택할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