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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역겨워

다음 날, 이은정은 이미 필요한 절차를 마쳤다고 내게 말했다. 그제야 나는 이은정이 아침 일찍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주 씨, 사실 전부터 이 말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건강 회복에 문제가 생길까 봐 말 못 하고 있었죠. 그동안 계속 고민했어요. 내가 마루를 데리고 가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말이에요. 만약 희주 씨가 돌봐주지 못할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은정의 아들은 전부터 그녀에게 스턴국으로 오라고 말했었다. 다만 그녀는 아직 나와 마루가 걱정되어 떠날 수 없었다. 얼른 그녀가 스턴국으로 오길 바라며 그녀의 집안에선 꽤나 많은 돌을 썼다. 나는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돈을 건넸지만, 이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희주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희주 씨가 얼마나 힘든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여기 사는 사람 중 희주 씨를 제외하고 돈이 부족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이미 수많은 주민들이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진욱이 내연녀를 데리고 왔다는 것도 말이다. 그들의 눈에 나는 불쌍하고 비참한 여자였다. 나도 딱히 숨기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어쩌면 배진욱만이 자신이 나에게 더없이 인자하게 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하간에 그가 나에게 준 돈은 다른 사람이 평생 나에게 줄 수 없는 돈이었으니까. 공항에서 나와 나는 고개를 젖혀 하늘 위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보았다. 마루가 어느 자리에 있을지는 몰랐지만 앞으로 스턴국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다. 집에 도착한 나는 텅 빈 방을 보았다. 집 안에선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텅 빈 집안은 서늘한 한기만 맴돌았다. 의사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던 나는 얼른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식사 준비를 했다. 배를 채우고 나면 약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방사선 치료받으러 가야 하기도 했다. 대충 국수를 끓여 먹었다. 너무도 맛이 없었기에 결국 몇 입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가만히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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