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6장

정지헌은 뭔가 더러운 걸 만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 향기 때문에 광기 어렸던 그날 밤을 떠올린 그는 저도 모르게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몸 아래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소정은 뺨이 붉었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으며 불안한 듯 그의 옷깃을 계속 쥐고 있었다. 그녀는 낮에 입었던 핑크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자세 때문에 옷깃이 살짝 벌어져 가슴이 살짝 보였다. 정지헌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저도 모르게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김소정은 그날 밤 그녀가 아니었다. 그날 밤의 그녀는 김소정처럼 더럽거나 역겹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김소정이 잠을 잘 때도 사람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다. 김소정이 문란한 여자라는 생각에 그는 짜증 난다는 얼굴로 그녀의 손을 뗀 뒤 차갑게 밖으로 걸어갔다. 김소정은 밤새 편히 쉬지 못했다. 그녀는 정지헌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조차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어렵게 깨어났는데 잠자리가 좀 이상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느껴지는 순간 김소정은 벌떡 일어났다. ‘젠장!’ 그녀가 왜 정지헌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걸까? 김소정은 겁에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정지헌은 없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둘러 침대를 정리했다. 그 일 때문에 김소정은 아침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고 악마 같은 정지헌의 눈치만 살폈다. 그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자 김소정은 그제야 살짝 안도했다. 아마 어젯밤 방으로 들어오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정지헌이 도우미를 불러 세웠다. “가서 내 침실의 이불이랑 침대 커버 모두 새 걸로 바꿔요.” 김소정은 입안에 넣은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지헌을 바라보았고 정지헌은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내 침대 따뜻했어?” 김소정은 소름이 돋아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녀는 그의 질문을 듣지 못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 고서준은 나른한 자태로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사무실 책상 끄트머리에 올려뒀다.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정지헌은 그가 달갑지 않았다. “넌 할 일 없어? 왜 자꾸 내가 있는 이 공사장으로 오는 거야?” “공사장 좋지. 직원들이 매일 힘들게 일하는 곳이잖아. 이곳에서는 서민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 “너 어디 아프냐?” 정지헌이 대꾸했다. 이때 양지민이 갑자기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인께서 또 오셨어요.” 고서준은 조금 전까지 퍼질러 있다가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면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양지민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뒤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 여자였네.” 정지헌은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닥쳐.” 고서준은 정지헌을 힐끗 보더니 문 앞에 있는 김소정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김소정은 예상대로 거절당했다. 그리고 새로 온 사장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풀이 죽은 채로 떠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상사님이 성의를 봐서 기회를 한 번 주시겠다고 하네요.” 김소정은 순간 화색이 돌았다. “공사장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아뇨... 일단 저쪽으로 가서 일 좀 해보세요. 상사님이 그쪽이 하는 거 보고 잘하면 공사장에 들여보내 준대요.” 김소정은 안내를 받고 벽돌과 자갈 앞에 섰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벽돌과 자갈을 리어카에 담아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공 현장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김소정은 우선 벽돌을 하나하나 리어카에 담기 시작한 뒤 삽으로 자갈을 다른 리어카에 실었다. 두 리어카 모두 가득 차자 그녀는 리어카를 끌고 십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시공 현장으로 향했다. 공사장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자 그녀는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일했다. 사무실 안에서 고서준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뜨거운 햇볕 아래서 열심히 일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쯧쯧... 몸이 저렇게 작은데 힘이 좋나 봐. 세 시간째인데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저 힘을 침대 위에서 쓰면 너도 버티지 못하겠어.” 정지헌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놈. 얼마나 심심하길래 저런 쓰레기를 가지고 노는 거야?” “쓰레기?” 고서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아내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다리도 길고 얼굴도 예쁜데 쓰레기라니. 네가 원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이 원할 거야. 저것 봐.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훤칠한 남자가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잖아.” 정지헌은 티 나지 않게 밖을 힐끗 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김소정을 도와주고 있는 건 그녀의 학창 시절 선배였던 허이준이었다. 김소정은 이번에 무조건 공사장에 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몸이 좋지 않은 것도 참고서 저녁까지 버텼다. 그러나 담당자라는 사람이 안 되겠다면서 가보라고 했다. 순간 김소정은 몸에 힘이 빠져서 넘어질 뻔했는데 허이준이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정지헌이 마침 그 광경을 보았다. 그는 조용히 들고 있던 펜을 돌리다가 시선을 거두고 부장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앞으로 저 여자 오면 그냥 쫓아내요.” “네, 대표님.” 김소정은 온종일 힘들게 일한 데다가 몸살도 낫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럽고 길을 걷는 것마저 힘들었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려와서 옆으로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양지민은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더니 깜짝 놀란 얼굴로 정지헌을 바라보았다. 정지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김소정이 바닥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양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정 씨를 태울까요?” 정지헌은 시선을 거둔 뒤 냉담하게 말했다. “그냥 가.” 양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시동을 걸었다. 정지헌은 백미러를 통해 김소정이 무릎을 짚고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입을 열었다. “돌아가.” 양지민은 어이가 없었다. 김소정은 머리가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차가 다시 돌아와 그녀의 곁에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가고 김소정은 정지헌의 차가운 표정을 보았다. “차에 타.” 그는 차갑게 말했다. 김소정은 본능적으로 거절했다. “괜찮아요.” “네가 밖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할머니는 또 날 탓할 거야. 죽는 건 상관없지만 나한테 피해주지 마.” 김소정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정지헌은 너무도 매정했다. 그녀는 결국 정지헌의 차에 앉았다. 더는 걸을 수가 없기도 했고 워낙 인적 드문 곳이라 택시를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소정은 그에게 왜 이곳에 있냐고 묻는 대신에 눈을 감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차가 멈춰서자 김소정은 다시 긴장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복부를 만지며 말했다. “왜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예요?”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