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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정지헌은 살짝 당황했다. 싸늘한 시선이 김소정의 얼굴에 닿았다가 금방 떨어졌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신지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김소정 씨도 오늘 생일이었어요? 아줌마, 혹시 아침에 저한테 해준 미역국 소정 씨가 먹다 남은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그건 지수 아가씨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거예요.” 주여정은 김소정의 기분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건지 서둘러 해명했다. 신지수는 붉어진 김소정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면 소정 씨를 위해서도 꼭 음식을 해주세요. 생일에 가족이 미역국도 안 만들어주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렇죠, 소정 씨?” 주여정의 표정이 잠깐 부자연스러웠다. “그럼요. 늦, 늦게라도 만들어줄 거예요.” 김소정은 너무 슬퍼서 웃고 싶었다. 김소정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김소정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지헌의 차가운 눈빛에 약간의 궁금증과 복잡함이 어려 있었다. 조금 전에 너무 매정하게 그녀를 대한 건 아닐까? 아니, 계략적이고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는 동정할 가치가 없었다. 강다은은 씩씩대면서 김소정을 따라가더니 분통을 터뜨렸다. “소정아, 너희 엄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그리고 정지헌 씨도 그래. 눈이 삐었나? 어떻게 신지수 같은 걸 좋아할 수 있지?” 김소정은 힘겹게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괜찮아. 너무 화내지 마.” 강다은은 갑자기 창백해진 그녀의 안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소정아, 너 괜찮아? 얼굴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 김소정은 고개를 저었다. “배가 좀 아프네. 나 먼저 돌아가서 쉴게.” “응, 얼른 돌아가. 오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응, 너도 화내지 마.” 김소정은 정씨 일가로 돌아간 뒤 얇은 이불을 덮고 몸을 말았다. 너무 추운데 몸은 이상하게 아주 뜨거웠다. 그녀는 몸을 잔뜩 말아서 붉어진 눈으로 창밖의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또 한 번 비가 내렸다. 김소정의 기분은 마치 날씨처럼 서늘하고 추웠으며 끝없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득 찼다. 정지헌은 저녁때쯤 돌아왔다. 그는 본관 창문을 통해 자신이 머무르는 다락방을 힐끗 보았다. 그곳은 사람 한 명 없는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정지헌은 도우미를 불러서 무심하게 물었다. “그 여자 돌아왔어요?” 도우미는 잠깐 당황하더니 뒤늦게 그가 누굴 가리킨 건지를 깨닫고 황급히 대답했다. “아주 일찍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온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정지헌은 별말 하지 않고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김소정의 억울함과 고집스러움이 담긴 눈빛이 계속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우미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련님, 지금부터 저녁 준비를 할 예정인데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신가요?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정지헌은 고개를 젓더니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건지 도우미를 불렀다. “미역국이 먹고 싶네요.” “미역국요?” “네.” 도우미는 깜짝 놀랐다. “오늘 누구 생일인가요?” 정지헌은 시선을 돌려 다락방을 바라보다가 덤덤히 말했다. “아뇨.” 김소정은 몸도 쑤시고 의식도 가물가물했는데 누군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정지헌이 싸늘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감히 내 방에 있으면서 감히 문을 잠가?” 김소정은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기분이 최악이었다. 정지헌을 봐도 무섭기는커녕 짜증만 났다. “날 쫓아내기라도 하든가요. 난 상관없어요.” 김소정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건방진 태도에 정지헌은 곧바로 화가 났다. 곧이어 정지헌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악랄하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널 감싸고 돈다고 해서 내가 널 어쩌지 못할 것 같아? 그리고 무슨 배짱으로 감히 지수 씨를 괴롭혀? 잊지 마. 이 결혼도, 네 신분도 모두 네가 지수 씨에게 빼앗은 거야.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지수 씨를 괴롭혀?” 또 신지수였다. 엄마가 신지수를 감싸고 도는 건 그렇다 쳐도 명의상으로 남편인 정지헌마저 신지수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김소정이 신지수에게 잘못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김소정은 정지헌을 향해 웃었다. 경멸과 조롱에 찬 표정으로 기묘하게 말이다. 정지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김소정은 미친 걸까? 김소정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짜증이 났고,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풀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정지헌을 향해 외쳤다. “내가 이 우스운 결혼 생활을, 아무 의미도 없는 이 헛된 신분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잘났으면 계약 파기해서 당장 이혼하든가요. 결국엔 본인에게 이혼할 능력이 없는 거면서 왜 지수 씨와 결혼하지 못한 걸 내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다들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는 날 탓하면서 욕하죠. 결국 따져 보면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은 당신... 읍...”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 단단한 문에 등이 부딪쳐서 아팠다. 정지헌은 음산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의 까만 두 눈동자는 마치 얼음 같았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 정지헌은 화가 나자 악마처럼 손에 힘을 주었다. 김소정은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정지헌 눈 속의 차가운 살기를 보고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난 할머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사실 널 없애버리는 건 내겐 쉬운 일이야.” 두려움 때문에 김소정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마 아파서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이 남자가 정지헌이라는 걸, 아르헨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는 걸 악마라는 걸 잊다니. 정지헌은 김소정을 밀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나대지 마.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정지헌이 떠난 뒤 김소정은 복부를 끌어안고서는 몸을 말고 덜덜 떨었다. 정씨 일가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배 속의 아이도 지워버릴 것이다. 김소정은 무시무시한 정지헌과 그 어떤 연결고리도 생기지 않길 바랐다. ‘아가야, 미안해.’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아주 잔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다. 김소정은 씁쓸한 마음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어르신, 소정 씨께서 배고프지 않으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드시러 오셨어요.” 이선화는 미간을 구기며 언짢은 얼굴로 정지헌을 바라봤다. 정지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역국을 한 입 먹어보더니 도우미를 향해 말했다. “이거 다 버려요.” 도우미는 그의 음산한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묵묵히 식탁 위 미역국을 쏟았다. 밤이 되자 정지헌은 약간 술기운이 오른 채로 돌아왔다. 그는 바닥에 몸을 말고 누워있는 김소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소정이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힘겹게 눈을 떴을 때 정지헌은 차갑게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김소정은 힘들었다.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복부도 계속 아팠다. 정지헌을 본 듯했지만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김소정은 다시 잠에 빠졌다. 정지헌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뒤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소정이 춥다고 하는 소리에 잠이 깨서 짜증 났다. “계속 시끄럽게 굴면 밖으로 쫓아낼 줄 알아.” 정지헌이 차갑게 경고했다. 그러나 김소정은 듣지 못한 건지 계속 춥다고 했다. 정지헌은 조명을 켜면서 차갑게 경고하더니 김소정의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보게 되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소정을 향해 외쳤다. “일어나.” 그러나 김소정은 대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듯 몸을 말고 있었다. 정지헌은 허리를 숙이더니 내키지 않는 얼굴로 김소정의 이마를 짚었다. 조금 뜨거웠는데 김소정은 계속 춥다고 했다. 아마도 몸살 때문에 열이 난 듯했는데 큰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김소정이 계속 시끄럽게 군다면 그는 자지 못할 것이다. 정지헌은 냉담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다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 이성화가 김소정을 끔찍이 챙기던 걸 떠올린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는 김소정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잠깐 고민하다가 김소정을 이불과 함께 들어 올려서 침대로 걸어갔다. 그러나 얇은 이불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발이 걸려 버렸다. 그 순간 정지헌은 김소정을 안은 채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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