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길막하지말고
그린 우드 클럽.
재수도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린다와 마주쳤다.
아마도 서류를 주러 온 듯 대낮부터 헐떡거릴 뿐만 아니라 땀 때문에 화장이 번졌다.
하지만 나는 섹시한 붉은색 나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전에 붙인 머리는 길이가 딱 허리까지 오는 데다 피부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못브이었다.
린다는… 긴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또 당신이야? 이런 꼴을 하면 대표님이 널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똑똑히 들어, 대표님은 옆자리는 언젠간 반드시 내가 앉을 거야!”
린다는 양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이를 악물었다.
‘어머나, 이건 전쟁 선포잖아?’
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린다 이모, 길막하지 말고 비켜요.”
나는 품에 있는 서류봉투를 꼭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너, 너….”
린다는 내 말에 화가 치밀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흥.
지난번에 성영준의 별장에서 그녀에게 반박을 하지 않은 건 내가 봐준 것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데 내가 더 이상 봐줄 이유 따윈 없었다.
걸음을 옮겨 안으로 향하려는데 린다가 또다시 달려왔다.
그녀가 밀리기도 전에, 바로 앞쪽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검은색 정장 차림의 허 비서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후배님, 여기에요.”
허비서는 아빠의 학생이었고 아빠의 체면을 봐서 나를 도와준 것이었다.
그에 반해 린다는 그저 비서에 불과했다.
성한 그룹에서는 허 비서의 부하인 셈이었다.
허 비서가 나를 부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로 씩씩대던 린다는 이제 내키지 않음과 울분만 가득할 뿐, 나를 더 괴롭히지는 못했다.
린다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나는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방금 했던 말 맞아. 성영준의 옆자리는 언젠간 반드시 내가 앉을 거야. 두고 봐.”
내 말에 린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허 비서를 향해 다가갔다.
“선배님, 이렇게 도와준 은혜는 반드시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나는 곱게 허리를 숙이며 가장 큰 예의를 보였다.
허비서는 성영준의 비서답게 차갑기 그지없었고 말하는 투도 비슷했다.
“이번 한 번 뿐입니다. 절대로 다음은 없어요. 대표님께서 아시게 되면 분명 화를 내실 겁니다.”
“네, 알겠어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허비서는 나를 성영준의 전용 휴게실로 데려가며 떠나기 전에 나에게 당부했다.
“대표님께서는 지금 바쁘시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네.”
나는 블랙 아니면 화이트뿐인 휴게실을 쳐다봤다.
아마 이곳에 자주 오지는 않는 듯 별다른 생활흔은 없어 얼핏 보면 고급 호텔 같아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 이곳저곳 자세히 살펴보다 끝내 소파 쪽에 앉았다.
검은색의 가죽 재질은 나의 길고 가는 두 다리를 더욱더 하얗고 예뻐 보이게 했다. 한 줌 정도 될 얇은 허리는 성영준도 좋아할 성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하던 끝에 나는 나도 모르게 졸기 시작했다.
아마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능 막바지 준비 때문에 수면이 심각하게 부족했던 탓인지 수능이 끝난 최근 보름 동안은 매일 자도 자도 잠이 부족했다.
오늘은 임무를 가지고 온 입장이니 절대로 잠들어서는 안 됐다.
나는 얼굴을 탁탁 쳤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오후부터 기다렸던 것이 해가 질 때쯤이 되어서도 성영준의 일은 끝이 나지 않았다.
둘러보던 나는 책장 뒤에 술 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에는 술이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잇었다.
나는 년식이 꽤 괜찮은 와인 하나를 꺼냈다. 그저 시간이나 죽일 겸 한잔하려고 했을 뿐인데 달고 신 맛이 아주 맛있게 느껴진 탓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반병 넘게 비워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술기운이 올라왔을 때쯤 나는 결국 못 참고 나머지 전부를 다 마셔버렸다.
그렇게 되고 나니 좋은 점은 더 이상 졸리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나쁜 소식은 내가 취했다는 것이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간도 배 밖으로 튀어나온 나는 그대로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발을 옮긴 나는 헤헤, 맨발로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눈을 감은 나는 스포츠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한 번 추고 또 한 번 돌던 나는 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잔뜩 당황한 내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허리를 단단히 받쳐주더니 세상이 빙그르르 돌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성영준의 얼굴이 바로 내 코앞에 있었다.
심지어 나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다리는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