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쌤통
이 자세로는 무려 성영준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성영준이 누구던가. 서경시 재계의 유명한 염라대왕이었다. 5살에 회사를 창업하고 7살에 중학교를 다니고 12살에는 홀로 출국한 뒤 20살에 귀국했을 땐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듣기로는 그의 눈에 든 프로젝트는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당시 성씨 가문 어르신은 그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곧 파산하는 회사를 넘겨주었지만 2년도 안 되는 시간 내로 흑자로 전환 시켰다.
그런 뒤 지사의 평직원에서 그는 고작 3년 만에 성한 그룹 본사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앉게 됐다.
지금은 이미 전국의 재계를 뒤흔드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있는 남자는 오직 다른 사람들을 내려보기만 했지 누군가가 그를 내려볼 기회 같은 건 쥐여주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2초도 안 돼 그는 내려오라는 듯 두 팔에 힘을 풀었다.
잔뜩 술에 취한 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오다 못해 당당해져 내려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뿐만 아니라 뽀뽀까지 하려고 했다.
“아저씨, 너무 잘생겼어요! 눈은 그윽하고 눈빛은 또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지고, 콧대는 뚝 뻗어있네요. 섹시한 입술은 왜 또 이렇게 힘을 줘요. 힘은 왜 준담, 유혹하고 싶으면 말로 해요. 저….”
막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는데 위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입을 턱 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빈속에 술을 마신 탓인지 한참을 토해도 별로 나오는 건 없이 괴롭히기만 했다.
심장은 말도 안 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슴을 두드리며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성영준이 따뜻한 물을 건네줬다.
“조그만 게 몰래 술이나 마시더니, 쌤통이야.”
어라, 이건 혼을 내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말투네?
나는 원래 조금이라도 잘해주면 배로 더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물잔을 받는 대신 입을 삐죽이며 서럽고 불쌍하게 그의 품에 안겼다.
“아저씨, 움직이지 마요. 좀만 기댈래요. 조금만요. 너무 괴로워요, 흑흑….”
성영준이 거절하기 전에 나는 그의 허리를 단단히 안았다.
어머, 성영준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니 괴로운 것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언제쯤 그의 여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다 안았어?”
성영준은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하는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 해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제가 방해가 된 거예요? 근데 걱정마요. 너무 오래 지체하진 않을게요. 딱 십분… 아니, 5분이면 돼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의 대답을 기다릴 리 만무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대답했다.
“거절 안 했으니까 수락한 걸로 알게요. 하하하, 이리 와요. 보여줄 게 있어요!”
나는 그의 팔을 잡은 채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딸꾹질까지 했다.
참 매정하기도 한 남자였다.
자리에 다가온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5분짜리 타이머를 설정했다.
그러니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얼른 서류봉투를 연 나는 필적 감정서를 꺼냈다.
“삼촌, 진짜 누가 날 모함하고 있는 거였어요. 그 편지 제가 쓴 거 아니에요. 그 물건들은 더더욱 제가 준비한 거 아니고요. 그날 저한테 해명할 기회도 안 주고 그대로 가버리더니 날 차단까지 하고. 이 열흘을 제가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 알아요?”
그렇게 말하는 나는 서럽기 그지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언제든 울 것처럼 굴었다.
성영준은 침묵했다.
“소지안, 난 너랑 이런 장난할 시간 없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쉽게 달래지지 않을 그런 정도였다.
나는 성영준이 나를 어린애로 보고, 조카인 성지태와 마찬가지로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날의 일은 그저 나를 멀리할 핑계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영준이 보기엔 나는 성지태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하아.
그에게 나의 진심을 보여주려면 하루 이틀로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오늘 내가 온 건, 오해를 풀기 위한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