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유미나는 고소해하며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칫덩어리를 드디어 없애버렸네! 아주 앓던 이를 뺀 기분이야!’
“강수지, 너 왜 피 흘려?”
이변섭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밀려오는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강수지는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강수지는 입술이 찢어지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 생리 중이에요. 생리혈이에요......”
이변섭은 짜증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표님, 병원에 데려갈까요? 너무 아파 보여요.”
유미나가 물었다.
어쨌든 아이도 인젠 유산되었을 테니 병원에 데려간 뒤, 이변섭에게 임신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강수지가 다른 남자와도 엮였다고 몰아갈 셈이었다.
그야말로 일타쌍피였다.
“생리라잖아요. 죽을병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둬요.”
이변섭은 조금이라도 강수지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고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유미나는 만족스러운 듯 거만하게 이변섭을 따라갔다.
강수지는 애써 몸을 지탱하며 밖으로 기어갔다.
“사... 살려주세요...”
“사모님!”
집사는 강수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 무슨 일입니까!”
강수지는 동아줄을 잡듯 집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병원, 병원에 좀 데려다주세요!”
병원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집사는 재빨리 움직였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급히 강수지를 수술실로 이동시켰다.
수술대에 누운 순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강수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2시간이 흘렀다.
“천만다행입니다.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
집사는 깜짝 놀랐다.
‘산모와......아이? 사모님이 임신하셨다고?’
간호사는 강수지가 누워있는 병원 침대를 밀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마침 유미나의 아버지 유병훈 병원장이 마스크를 낀 채 지나갔다.
유병훈은 무심결에 옆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침대에 누운 여자가 강수지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아까 수술실에서 나온 선생이 얘기한 산모가 강수지라고? 이 대표의 아이를 임신했구나......!’
유병훈은 당장 모퉁이에 몸을 숨기며 유미나에게 연락했다.
“미나야,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빠? 왜 이렇게 다급해요?”
유미나는 인젠 아무 걱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 금방 수술실을 지나가다가 수술을 마친 선생이 산모와 아이가 무사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산모가 강수지였어!”
유미나는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뭐라고?! 그렇게나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아이가 살았다고? 정말 믿을 수 없구나!’
......
강수지가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강수지 씨, 수금하시고 약도 타가세요. 보호자 분은 안 계세요? 그리고 이따가 초음파 검사하러 가야 합니다.”
간호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약이요? 초음파 검사요?”
“네, 선생님께서 유산방지약을 처방해 주셨어요.”
강수지는 멈칫하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 아이......”
“네, 아이도 살렸습니다. 저희 선생님께 감사드리셔야겠어요.”
강수지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더니 웃기 시작했다.
기쁨에 겨운 눈물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강수지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아이의 존재를 알자마자 아이를 떠나보내게 될 줄 알았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약도 받고 검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강수지는 감히 더 머무를 마음을 먹지 못하고 급급히 병원을 나섰다.
지금의 강수지에겐 병원에 입원할 마땅할 이유가 없었다.
강수지는 임신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제경채로 돌아가자 거실은 이미 핏자국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강수지는 이불을 펴고 누우려 했다.
“아가야, 이런 엄마를 만나서 고생이 많아......”
하지만 강수지는 나약해질 시간이 없었다.
내일이면 다시 회사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강수지는 멀쩡한 것처럼 보여야 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생리 중이어서 몸이 좋지 않다고 잡아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