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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강수지는 놀란 나머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애써 임신 소견서를 향해 손을 뻗은 뒤, 손바닥에 움켜쥐고 구겨버렸다. 이변섭의 입술은 어느새 강수지의 어깨에 닿았다. 강수지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낀 이변섭은 고개를 들고 강수지의 손바닥에 숨겨진 종이 뭉치를 바라보았다. “손에 든 그거, 뭐야. 이리 줘!” 이변섭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내놔!” 강수지가 내놓으려 하지 않자 이변섭은 거센 힘으로 그녀의 주먹 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손가락 부러지고 싶어? 힘 풀어!” 이변섭은 경고했다. 강수지는 절대 손을 펼 생각이 없었다. 이변섭에게 임신 사실을 들킨다면 강수지든 아이든 끝장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임신 소견서 종이 한 장은 강수지와 아이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변섭에 의해 손가락이 다 펴질 위기에 놓인 순간, 강수지는 벌떡 몸을 일으켜 이변섭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강수지, 이거 놔!” 강수지는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이변섭을 안은 채, 임신 소견서를 입 안에 넣어버렸다. 강수지는 임신 소견서를 삼켜버려서라도 증거를 없애고 싶었다. 이변섭은 그런 그녀를 막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강수지는 몇 번 씹더니 그대로 삼켜버렸다. 이변섭은 강수지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 “정말 별짓 다 하네! 뱉어!” “못 뱉어요. 이미 뱃속으로 들어갔어요.” 이변섭은 충혈된 눈으로 물었다. “그 종이에 뭐가 적혔길래 남한테 못 보여주는 거야?” 강수지는 말이 없었다. “강수지, 당장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어.” 강수지는 눈을 감고 목을 들이대며 말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당신 손에 죽을 텐데 그냥 지금 죽여요!” 강수지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이변섭을 가만히 기다렸다. 강수지의 목을 당장이라도 조를 것 같았던 이변섭의 커다란 손은 끝내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닿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빠르게 멀어졌다. 강수지는 눈을 떴다. 계단 입구로 사라지는 이변섭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목이 너무나도 불편했고 속도 좋지 않았다. 입덧과 종잇장을 그대로 삼킨 속 쓰림이 함께 몰려왔다. “우웁.” 강수지는 소파에 엎드린 채, 담즙까지 토해낼 지경으로 속을 비워냈다. 입 안에서는 쓴맛이 느껴졌다. 자칫 이변섭에게 임신한 것을 들킬 뻔했지만 다행히도 들키지 않았다. 그때, 유미나가 거실로 들어왔다. 강수지가 구토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유미나는 질투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강수지 따위가 뭐라고 변섭 씨랑 하룻밤을 보내?! 저 아이를 내가 임신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부귀영화는 다 내 손에 들어올텐데......’ “어머, 강수지. 너 왜 그래?” 유미나는 질투에 찬 채 다가갔다. 강수지는 유미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로 입을 헹궜다. 하지만 유미나는 적극적으로 강수지 옆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 “헛소리 하지 마!” 심장이 철렁한 강수지는 즉시 반박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 유미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리번거렸다. “이 대표님은?” “안방에 있어.” 강수지는 유미나가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면전에서 알른거리니 짜증만 날 뿐이었다. 유미나는 계단 쪽으로 갔고 강수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순간, 유미나의 눈빛은 사악함으로 번뜩였다. ‘절대 강수지가 아이를 임신하게 해서는 안 돼. 낳은 아이가 대표님을 똑 닮으면 어떡해? 그러면 내가 대신했던 일이 다 들통날 테고 강수지는 모든 게 다 탄탄대로겠지?’ 유미나는 일부러 강수지에게 다가갔다. 스쳐 지나갈 때, 유미나는 일부러 발을 내밀고 강수지를 넘어트렸다. 임산부가 넘어지면 아이는 위험해질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강수지는 유미나에게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홑몸이 아닌 강수지는 평소보다도 더 조심했다. 유미나가 발을 내민 순간, 강수지는 그녀의 발을 완벽히 피했을 뿐만 아니라 유미나의 발을 지나쳐 유미나의 뒤꿈치를 가볍게 찼다. “으악!” 유미나는 중심을 잃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강수지는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어머, 좀 조심히 걸어. 다 큰 어른이 넘어지다니.” “너!” 유미나는 화를 버럭버럭 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유미나는 강수지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그건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거야.” 강수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털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그러자 고개를 든 순간, 2층에 서 있던 이변섭과 눈이 마주쳤다. 이변섭은 무거운 얼굴로 강수지를 바라보았다. 소름 돋는 눈빛이었다. “대표님!” 유미나는 이변섭을 발견하자마자 불쌍한 척하며 이변섭에게 일렀다. “강수지가...... 저를 괴롭혔어요. 멀쩡히 걷고 있는 저한테 일부러 발을 뻗으면서 넘어트렸어요! 그래서 제가 넘어졌고요.” 강수지는 유미나처럼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본 적 없었다. 분명 유미나가 먼저 강수지에게 발을 뻗어 강수지를 넘어트리려했다. 강수지는 해명하려 했지만 갑자기 이변섭이 자기를 믿을 리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강수지는 이변섭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강수지는 속도 쓰렸고 마음도 쓰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이변섭은 몸을 숙여 유미나를 부축했다. 유미나는 냉큼 이변섭에게 달라붙으며 이변섭을 꽉 안았다. “대표님, 너무 아파요......” 유미나는 이변섭의 품에 기댄 채 연약한 척했다. 이변섭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강수지, 이리 와봐.” 강수지는 이변섭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간도 크네. 미나 씨를 넘어트려? 지금 네가 어떤 처지인지 몰라?” “저는 남을 먼저 건드릴 사람이 아니에요. 유미나가 먼저......” 강수지가 답했다. “닥쳐!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이변섭은 냉랭한 목소리로 강수지의 말을 잘랐다. 강수지가 대답도 하기 전에 유미나는 일부러 관대한 척하며 말했다. “괜찮아. 확실히 내가 조심하지 않은 것도 맞고.” 강수지는 순간 경계심이 발동했다. ‘유미나가 내 편을 들 리 없는데, 틀림없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유미나는 강수지에게 다가가며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 난 너랑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어. 강남에서도 난 친구가 별로 없기도 하고......” 강수지는 냉큼 손을 빼내며 뒤로 물러섰다. 강수지가 물러서자 유미나는 강수지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그녀는 강수지의 손을 붙잡는 척하면서 강수지를 세게 밀어버렸다. 강수지는 힘없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마침 강수지의 옆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강수지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탓에 그대로 배를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강한 통증이 강수지의 온몸을 자극했다. “어머,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수지야, 너 괜찮아?” 유미나는 놀라며 물었다. 그녀는 강수지를 부축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기뻤다. ‘이 정도면 아이는 유산됐겠지?’ “으악! 대표님! 강수지, 피 흘리는 것 같아요!” 유미나는 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변섭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실눈을 뜨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강수지는 강한 통증 때문에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정신을 잃지 않도록 애썼다. ‘쓰러지면 안 돼!’ 강수지는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움츠렸다. “아파, 너무 아파......” 강수지는 창백한 얼굴로 읊조렸다. 피는 서서히 그녀의 바지를 붉게 물들였다. ‘아이, 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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