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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회사 밖으로 뛰어나간 강수지는 택시를 세웠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꺼내 기사의 손에 쥐어주었다. “저한테 지금 있는 돈이 이게 전부예요. 제발 강남 교도소로 데려다주세요.” 기사는 그녀가 너무 불쌍해 보여 동의했다. 강수지가 도착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들 것에 누워 있었다. 팔뚝과 다리에는 전부 화상이 가득했다. 그는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고통에 신음했다. “아빠!” 강수지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 나 좀 봐봐. 나 수지야…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렇게 크게 다치신 거예요!” 교도관이 대답했다. “스스로 한 겁니다. 저희랑은 상관없어요.” “CCTV는요? 사고 과정 전체를 확인해야겠어요!” “여기 있는 CCTV는 아무나 보여줄 수 없습니다.” 강수지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수지야, 아파, 아파….” 강호철이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외쳤다. “아빠 좀 도와줘, 가려워….” 가옿철이 화상으로 인 수포를 긁으려 하자 강수지가 덥석 그 손을 잡았다. “아빠, 좀만 찾아요. 바로 병원 데려가 줄게요!” “안 됩니다. 현재 구금 중인 범인이라 나가려면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럼 아버지가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교도관이 대답했다. “사실 당신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걸 탓해야죠. 당신 아버지는 들어온 뒤로 적잖이 고생했어요.” 강수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번뜩였다. 이변섭! 그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걸로도 부족한 건까? 복역 중인 아버지마저도 가만두지 않다니! “이변섭을 마난러 가야겠어요. 지금 당장 찾으러 갈래요….” 강수지는 눈물을 닦은 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맞은 편에서 의기양양한 얼굴의 유미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조롱을 담은 웃음을 흘렸다. “강수지, 괜한 힘 빼지 마. 이변섭이 널 그렇게 싫어하는데, 네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더 좋아하겠지!” “너였어?” “난 그냥 심심해서 네 아버지를 보러 온 것뿐이야.” 유미나가 대답했다. “그런데 실수로 뜨거운 물 주전자를 엎어서 저렇게 다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럴 리가! 네가 한 짓이지!” 유미나는 우쭐해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증거 있어?” 강수지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유미나를 노려봤다. 두 눈에는 불길이 일기 직전이었다. “때리고 싶지?” 유미나가 도발했다. “때려, 지난번에는 변섭 씨가 막아서 그렇지, 하마터면 날 때릴 뻔했잖아. 오늘은 변섭 씨도 없는데 마음껏 때려 봐.” 그녀는 강수지가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도발하고 있었다! “너도 나한테 뜨거운 물을 붓는 게 좋을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잖아. 강수지, 가만히 있지만 말고 움직여.” 유미나는 우쭐해하는 얼굴로 강수지의 눈앞에서 끊임없이 배회했다. “무슨 불만 있으면 나한테 풀어.” 강수지는 심호흡을 했다. “널 건드린 거 나야, 내 아버지가 아니라.” 유미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넌 내가 교도소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데 모두가 내 편에 설 수 있게 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줄 알아?” “그러니까….” “맞아.” 유미나가 말했다. “변섭 씨가 이렇게 하라고 시킨 거야. 어차피 넌 비천한 명줄이고 네 아버지도 진작에 죽었어야 할 목숨이잖아! 변섭 씨가 남겨둔 건 가끔씩 끌고 나와 화풀이나 하려고 그런 거야!” 강수지의 입안에 온통 피 맛이 느껴졌고 목구멍에도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이게 다 이변섭이 묵인한 것이라니…. 참으로 악독한 사람이었다! “왜, 도대체 왜!”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서 치료해 줄 건데!” “매를 맞아도 개처럼 짖기는 싫다며?” 강수지는 깨달았다. 이 순간, 가족의 안위 앞에서 그녀의 자존심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유미나는 오만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시작해, 안 그럼… 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거든.” 강호철은 비록 다쳤지만 의식만은 비교적 멀쩡해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안돼, 수지야. 안… 안 아파….” 강수지는 억지로 눈물을 꾹 참은 뒤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 했다. 소리가 좁은 방 안에 메아리쳤다. 한 번 짖을 때마다 심장이 그녀의 살갗을 베는 듯했다. “괜찮네.” 유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강수지. 앞으로는 나한테 공손하게 굴어. 미래의 이씨 가문 사모님은 나야!” 그녀는 무감각하게 물었다. “이제 아버지를 병원에 보낼 수 있어?” “의사를 불러 약 좀 바르면 그만이지. 뭐가 그리 귀한 몸이라고 병원까지 데려가? 게다가, 너 그럴 돈은 있어?” 강수지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유미나는 너무나도 통쾌했다! 강수지가 이변섭과 잠자리를 하고 하마터면 출세할 뻔했다는 것만 떠올리면 유미나는 더없이 질투가 났다. 다행히 영리한 아빠가 자신이 대체하게 해줘서야 오늘날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틈을 타 유미나는 죽어라 괴롭혀 강수지가 더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은 이변섭이 자신을 예뻐하고 있으니 설령 오늘 이 일을 자신이 혼자 저지른 것이란 걸 알게 된대도 질책할 일은 없었다! 유미나는 일부러 강수지의 어깨를 세게 부딪친 뒤 하이힐을 또각이며 나갔다. 강수지는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 “아빠.” “수지야, 고생이 많은… 내, 딸아….” “아니야, 아빠.” 그녀는 강호철의 손을 꼭 잡으며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아빠와 엄마만 있으면 난 아직 살아갈 수 있어!” …… 교도소를 떠났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곳은 제경채와 아주 멀어 강수지는 족히 두 시간을 걸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이변섭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움찔 몸을 떨었지만 무감각함이 더 컸다. 그는 악마가 따로 없었다. 그녀를 지옥으로 끌어내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하게 만들었다! “어딜 다녀와?” 이변섭이 물었다. 강수지는 지금은 더 얌전하게 더 순종적으로 구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이 너무나도 괴로워 차갑게 대꾸했다. “제가 어딜 갔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이변섭이 미간을 찌푸렸다. “넌 너에게 24시간 감시를 붙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일은 안 그럴 거예요.” 강수지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피곤해요, 이제 가서 쉬어도 되나요?” “너 지금 어떤 태도로 날 대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순간, 눈물과 서러움이 이성을 뚫고 이변섭에게 터져 나가려 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어놓고도 자신이 공손하기를 바라는 걸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일순간의 분노는 이변섭의 더욱 무서운 처벌로 돌아왔다. 강수지는 갑자기 유미나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왜 그녀는 이변섭의 편애와 사랑을 받는데 자신은 살아가는 것마저도 이렇게 힘겨운 걸까! “강수지, 내가 말했었지.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변섭은 사진을 들어 그녀의 앞에 내던졌다. “그런데도 룰을 어겼군!” 사진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바로 폐지 수거점 입구에서 박태오와 마주한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박태오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조금 구겨져 있는 사진을 보면 누군가가 오랫동안 힘껏 구기고 있었던 듯했다. “저와 그 사람의 일에 대해 오늘 전부 이야기했어요.” 강수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숨긴 건 없어요.” “오늘 전에 분명 만났었잖아!”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이변섭이 차갑게 되물었다. “그럼 왜 말하지 않은 거야?” “깜빡했어요. 게다가, 딱히 얘기할 거리도 못 되고요.” 그녀는 이변섭이 자신이 폐품을 줍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게 더 두려웠다. 그랬다간 유일한 경제적 수입마저도 사라지게 되었다.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난 이변섭은 그녀를 끌고 욕실로 가더니 거세게 벽으로 밀쳤다. 이내 이변섭은 샤워기를 가져와 찬물을 틀더니 강수지를 향해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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