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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라이벌의 품에 안기다

나는 서호에 작은 별장이 있었다. 그건 부모님께서 혼수로 준 것인데 이럴 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별장에 도착한 후, 운전기사는 나를 도와 짊을 옮겨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천천히 정리하고 싶어 아무 핑계나 대고 운전기사를 돌려보냈다. 그렇게 혼자 천천히 조금씩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상자가 무거운 편은 아니지만, 방이 2층에 있어 왔다갔다만 해도 아주 힘이 들었다. 그렇게 두 번을 반복하니, 너무 힘이 든 탓에 세 번째 상자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은하?”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내가 잔뜩 의아해하며 뒤로 돌아서자 흰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의 키 큰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차도준? 차도준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차도준과 나는 같은 대학 동창이었다. 차도준은 학생회 회장이고, 서진혁이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오늘날,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서진혁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와 그리 가까이 지내지 않았었다. 비록 대학에서 자주 마주치긴 했었지만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하는 정도? 하지만 이 첫 만남은 전생에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지금 그를 다시 보면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어도 그의 몸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정말 너였구나?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차도준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옆에 놓인 몇 개의 종이 상자를 보고 깜짝 놀라하며 한마디 했다. “이게 다 뭐야?” 그 말에 나는 빙긋 웃으며 사실대로 말했다. “이사하려고.” 그러자 차도준은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별거의 증조 아니야? 무슨 일 있어? 서진혁이 너를 쫓아내고 내연녀를 집에 들인 거야?” 차도준은 독설을 퍼부었다. 학창 시절부터 차도준은 워낙 말발이 센 탓에 서진혁은 항상 그를 이기지 못했었다. 그래서 차도준을 싫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도 서진혁의 스캔들 기사를 본 것이 분명했다. 방관자조차 서진혁과 연하윤이 무슨 사이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도, 서진혁은 치졸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있었다. 전생에 정말 그에게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하니 정말 비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혼자 이사를 나온 거야. 하지만, 곧 내연녀를 집에 들일 거야.” 아마 나와 서진혁이 이혼하면 연하윤은 지체 없이 그의 옆자리를 탐할 것이다. 내가 허리를 굽혀 막 그 가장 큰 상자를 옮기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차도준이 그 상자를 들고 안으로 걸어갔다. “내가 도와줄게. 넌 그 옆에 작은 상자나 옮겨.” 나는 작은 상자를 안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내 맞은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전생에 나는 서진혁에게 상처를 입고 치료받으러 이곳에 왔었는데, 그때 그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여기서 그를 다시 만날 줄은 몰랐었다. 그렇게 정신이 딴 데 팔려있는 탓에 발밑의 계단을 보지 못해 실수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무릎이 계단에 부딪히고 손에 들고 있던 상자마저 바닥에 그대로 툭 떨어졌다. 나는 숨을 푹 들이마셨다. 순간의 고통으로 차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에, 차도준은 다급히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놓고 나에게로 달려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어디가 부딪힌 거야?” 그가 나를 부축하려고 하자, 나는 고통에 그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무릎. 잠깐만. 너무 아파서 일어설 수가 없어.” 그 말에 차도준은 바로 나를 안고 소파에 올려놓았다. 내 바짓단을 천천히 위로 걷어 올리자, 양쪽 무릎이 찰과상을 입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차도준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약 있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았다. 이제 막 이사 온 탓에 아직 구급 위약품을 구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 약 가져올게.” 이 말만 남기고, 차도준은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 약과 면봉을 가져와 직접 소독하기 시작했다. 소독약이 상처가 난 곳에 닿자 따끔따끔한 통증이 전해왔다. 나는 고개를 숙여 상처를 바라보며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응급 처치를 마친 차도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제서야 우리 두 사람의 사이의 거리가 불과 1~2센티미터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거의 뽀뽀를 할 것만 같았다. 나와 차도준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마치 시선을 옮기는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숨결이 뒤엉키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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