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임신테스트기
“이만 헤어지자고?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내가 요 며칠 동안 너한테 신경을 써주지 못해 외로워서 이러는 거야? 이런 장난을 쳐서 내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래? 좋아. 지금 네 그 바람을 들어주지. 내일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해도 내 탓 하지 마.”
말을 마치고, 서진혁은 내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하더니 내 몸 구석구석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나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서진혁은 오히려 나를 더욱 꾹 누르더니 손을 뻗어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순간, 이러다가 서진혁에게 강제로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당황하여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어 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그가 잠시 멍하니 넋을 놓고 있자 나는 재빨리 그를 밀어내고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 뒤, 침대 귀퉁이로 몸을 움츠렸다.
순간, 나는 잔뜩 화가 난 나머지 눈시울을 붉히며 한마디 했다.
“혼인 관계에서도 성추행은 얼마든지 성립돼. 한 번만 더 나한테 손을 대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망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
그 말에 서진혁은 마치 한 마리의 늑대처럼, 당장 잡아먹기라도 하듯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한마디 했다.
“그래. 연은하. 네가 먼저 제안한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
잠시 후,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웅크리고 몸을 계속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가 나에게 키스를 퍼부었던 것만 생각하면 구역질이 몰려왔다.
순간, 속이 울렁거려 나는 곧바로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를 껴안고 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실제로 어떤 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방으로 다급히 달려온 은희 아주머니는 내가 토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물 한 잔 건네며 왜 또 싸웠느냐고 한숨을 쉬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모님, 혹시 임신하신 거 아니에요?”
물을 마시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전생에 생일이 한 달 지났을 때, 임신한 지 보름 남짓 되었다는 검사 결과가 문득 생각이 났다. 하지만, 어쩌면 그 아이와 인연이 없었던 탓인지 결국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었다.
시간을 따져보면 아직 임신할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행여 정말 임신했을까 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저 최근에 위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은희 아주머니의 의심을 피했다.
하지만, 걱정이 가득한 탓에 침대에 누워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바로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한동안의 기다림 끝에 테스트기에 빨간 줄 한 개가 나타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신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 상황이 정말 난처해질 뻔했어. 안 돼. 이혼을 서둘러야겠어. 이 아이와 인연이 없는 건 어쩌면 좋은 일인 건지도 몰라.”
아이가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봤자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나도 서진혁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연하윤이었다.
연하윤은 내 손에 임신 테스트기가 들려있는 것을 바로 발견했다. 그녀의 시선에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을 씻었다.
“언니, 임신했어? 형부는 이 사실을 알아?”
나는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고 알듯 말듯 애매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얘기하기 일러.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내 말에 연하윤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잠시 후, 나는 방에서 나와 은희 아주머니에게 주스를 좀 만들어 달라고 하고 연하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사랑스럽고 연약한 겉모습 뒤에 그렇게 역겨운 얼굴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때, 침묵 끝에 연하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아이의 일은 빨리 형부한테 알려야 해. 자꾸 미루면 안 돼. 전에 형부가 아직은 아이를 별로 갖고 싶지 않다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빨리 얘기를 꺼내야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 의논할 수 있어. 개월 수가 차게 되면 일은 더욱 처리하기 어려워져. 축복받지 못할 아이는 태어나봤자 고생만 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