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윤호진이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네가 먼저 바람을 피웠잖아, 상대방이 널 빈 몸으로 나가라고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아, 재산 절반을 나누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강수연은 미간을 찌푸렸고 어젯밤 일이 생각나 무심코 반박하려고 했다.
그게 진실이 아니야...
강수연이 설명하려고 했지만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보자 하려던 말을 결국 삼켰다.
됐어, 안 믿을 거야.
그때 그는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 짓고는, 설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냉정하게 이별을 고했다.
지난 일이 떠오르자 강수연은 이상한 기분을 누르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걔도 밖에 여자 있어."
"남편이 바람을 피운 실질적인 증거가 있는 거야?"
윤호진이 차분하게 물었다.
그의 냉담한 모습이 그때의 다정하던 소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강수연은 난감 해하며 말했다.
"둘이 호텔에 드나드는 사진만 찍었어."
윤호진은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정말 끼리끼리 잘 만났네."
그의 말이 너무 거슬렸다. 강수연은 심호흡하고 말했다.
"윤 변호사, 내가 지금 그쪽 고객이야, 개인감정 섞지 마, 넌 내가 어떻다는 걸 평가할 자격 없어."
그녀는 멈칫했다.
"넌 그냥 어떻게 해야만 순조롭게 이혼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걸 받을 수 있는지만 알려주면 돼."
자격이 없다는 말에 윤호진은 순간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딱딱하게 말했다.
"재산 분할하고 싶으면 상대방이 바람피웠다는 증거 찾아, 상대방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감정이 파열됐다는 증거랑 1년 이상 별거했다는 증거 제출해야 해."
"그래, 알겠어."
강수연이 뒤돌아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녀가 거의 문어귀까지 갔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말했다.
"강수연."
강수연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1초... 2초...
"나중에 더 자세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윤호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응... 그럴게."
강수연이 나갔다.
윤호진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분명 묻고 싶었던 건, 그때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냐는 거였다.
그는 의자에 기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다이아반지를 꺼냈다.
이건 강수연이 어젯밤 호텔 침대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볼이 새빨개서 촉촉한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그의 목을 감싸고 혀끝으로 그의 목젖을 가볍게 핥았다...
그 순간, 윤호진의 남아 있던 이성이 모두 무너졌고 강수연한테 진하게 키스하고는 그녀의 몸에 자기만의 흔적을 남겼다.
노란 불빛아래, 가빠로운 숨결, 서서히 올라가는 체온까지...
그가 마지막 한 방을 하려는데, 그의 가슴을 막고 있는 그녀의 약지에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는 걸 무심코 보게 되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모든 뜨거움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결국 강수연이 잠들어 버렸고 그는 더는 그녀를 터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도 그녀한테 두 사람이 실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지 않았다...
3월 봄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싸늘했다.
강수연은 짙은 회색 코트를 여미고는 뒤돌아 운현로폼을 바라보았다.
윤호진의 그 싸늘하고도 잘생긴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5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말이다...
강수연은 심호흡하고는 자꾸 끓어오르는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떠났다.
운현로폼을 나온 강수연은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녀의 엄마가 3년 전에 심장수술을 했는데, 몸이 계속 허약해서 계속 요양원에 살고 있었다.
그녀가 온 걸 보자, 연미주는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늘 어쩐 일로 엄마 보러 왔어?"
강수연은 일을 하지 않지만 평소 아주 바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찾았고 이것저것 시켰다.
연회와 사모님들 모임 말고는 거의 문밖을 나가지 못했고 엄마한테 가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강수연은 손에 든 과일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오고 싶으면 오는 거죠."
연미주는 딸을 잘 알았기에 바로 그녀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시어머니가 또 널 괴롭혔어?"
강수연은 침묵하다가 결국 엄마한테 말하려고 결심했다.
"엄마, 저 심씨 가문에서 나왔어요, 지금 호텔에서 살아요."
연미주는 그녀가 나왔다는 말에 놀라긴 했지만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이번엔 또 왜 그랬는데? 지금 바로 지운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겠어."
"아니에요, 엄마, 저 심지운이랑 이혼할 거예요."
강수연은 엄마를 막아 세우고는 차분하게 자기 결정을 말했다.
"이혼?"
연미주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전에는 아무리 기분이 상했었도 이혼 얘기는 안 했잖아! 며칠 전에도 두 사람이 관계 맺는다고, 아이 가지려 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 관계 맺은 적 없어요."
강수연은 더는 이 결혼에서 그녀의 비참함을 말하고 싶지 않아, 연미주한테 이혼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많은 자극을 받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심지운이 절 안 사랑하는 거 알잖아요, 저도... 정말 사랑한 적 없어요, 사랑이 없는 결혼은 감옥이에요, 저 더는 이렇게 억울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강수연은 눈시울이 빨개졌다. 연미주는 딸의 이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녀를 안고 위로했다.
"그래, 우리 연이가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해, 어차피 그동안 우리가 진 신세빚은 모두 다 갚았어."
대학교 2학년이 끝난 여름방학, 연미주의 심장병이 재발했는데, 강수연이 마침 또 갑작스러운 이별을 당했다. 심지운 아빠가 심장 기증자를 찾아줬고, 전학도 도와줘서, 모녀를 경윤성에 데려와 수술비도 지원해 주었다. 나중에 연미주가 결혼반지를 팔아 그 돈을 갚아주었다.
하지만 돈은 쉽게 갚을 수 있어도, 그 은혜는 결코 다 갚을 수 없었다.
그러다 심지운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수연이 성격이 나른하고 부드러웠기에 심운봉은 그녀를 자기 아들 곁에 있게 하고 싶었고 심지어는 무릎 꿇고 그녀한테 사정했다...
은혜를 갚기 위해 강수연은 동의했다.
3년 동안 그녀도 그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이미 유부녀가 됐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와이프로서의 책임을 다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심지운은 전혀 그녀를 와이프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시어머니도 그녀를 며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씨 가문에서 하인이라는 말이 그녀한테 딱이었다.
강수연이 정신을 차렸으니 엄마인 연미주가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다!
연미주가 또 물었다.
"심지운이 이혼을 동의했어?"
"아니요, 동의 안 했어요."
"그럼 이제 어떡해?"
강수연이 위로했다.
"괜찮아요, 이미 변호사한테 연락했어요, 이혼 소송할 수 있어요."
강수연은 요양원을 나와 호텔로 돌아갔다.
시간이 이미 늦었기에 밖이 어둑어둑해졌고 어둠이 내렸다.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 심지운이 막 접대를 끝냈다.
그가 술을 많이 마셨는데 비서가 그를 집에 데려갔을 때는 이미 저녁 12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