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강수연이 고개를 들자 마침 윤호진의 싸늘한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찰나의 순간, 남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렸는데 마치 그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민하정은 그녀를 바라보고 또 심지운을 바라보며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남편이야."
"심 대표님이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전 민하정입니다, 수연 선배 운성대 후배예요."
민하정은 손을 내밀어 심지운과 악수하고는 열정적으로 칭찬했다.
"두 분 참 선남선녀네요, 선배 참 복도 좋아."
그러고는 무심한 듯 옆에 있는 윤호진을 힐끗 보더니 다시 강수연을 바라보며 농담하듯 웃으며 말했다.
"심 대표님처럼 훌륭하신 분을 대체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나도 경험 좀 전수해 줘, 나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구애하고 싶거든."
"그럼 잘못 물어봤어, 난 구애만 당해봐서 전수해 줄 경험이 없어."
말을 끝내자마자 강수연은 오른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무심코 보았는데, 마침 윤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아주 찰나였지만 심지운은 아주 예민하게 이상함을 눈치챘다.
"저분도 네 친구야?"
강수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부정했다.
"윤호진이야, 운성대 동창이야, 본 적은 있는데 친하지 않아."
그녀와 윤호진이 전 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도 않았고 윤호진이 자신이 선임한 이혼 변호사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안 친해?
윤호진은 입꼬리를 올려 비꼬듯 살짝 웃었다. 보아하니 강수연이 남편한테 별로 감정이 없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이혼하기 싫어서 자신이 선임한 이혼 변호사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민하정은 윤호진과 강수연의 반응을 모두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나 두 사람이 싸운 거야, 이제 아는 척도 안 하네."
"나중에 기회 될 때 다시 얘기해."
민하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윤호진을 보며 애교를 부렸다.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아, 빨리 들어가자."
윤호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하정과 같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
심지운은 강수연을 아파트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강수연이 길옆에 서서 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아, 택시 불렀어, 곧 올 거야."
"우리 사이가 이제 집도 못 데려다줄 정도로 엉망인 거야?"
심지운은 언짢았다.
강수연은 그가 기분이 좋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녀가 부른 택시가 도착하자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잊지 않고 한마디 보탰다.
"그럴 필요 없어."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택시에 탔다.
심지운은 여자한테 이렇게 거절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잘생긴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그는 차문을 확 열고는 씩씩거리며 들어가 액셀을 밟았다.
청하음은 풍경이 아주 좋았다. 나무들을 많이 심었기에 밤바람이 얼굴에 아주 시원하게 불어왔다.
강수연은 급하게 집에 가려고 하지 않았고 달빛 아래에서 산책했다.
누군가 강아지를 산책시키자 그녀는 문뜩 자신이 전에 길렀던 고양이가 생각나 눈빛이 어두워졌다...
우리 귤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 호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울렸고, 강수연이 꺼내보자 화면에 "쓰레기"라는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저장한 윤호진의 이름이었다.
"무슨 일 있어?"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 볼 일 있어."
수화기 너머로 냉담한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는데 말하고 나서는 전화를 끊었다.
강수연은 끊겨버린 화면을 보며, 아마 윤호진이 이혼에 관해 말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거두고 더 산책하지 않고는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서 강수연은 잠옷을 갈아입고서야 윤호진한테 문자를 보냈다.
[도착했어, 와.]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되지 않아 벨이 울렸다.
강수연이 문을 열자 조각 같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칠흑 같은 눈동자도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아주 차가웠다.
마치 누군가 그한테 빚진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강수연은 마음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깨끗한 남자 슬리퍼를 꺼내 주었다.
집에 왜 남자 슬리퍼가 있어? 심지운을 위해 준비했나 보네.
윤호진은 더욱더 그녀가 사실은 이혼하기 싫다는 추측을 확신했다.
그는 갈아 신지 않고는 문어귀에 서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혼 변호사 따로 선임해, 난 너랑 이렇게 남자를 잡을 놀이, 같이 할 시간 없어."
강수연은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왜 갑자기 내 선임을 해지하려는 건데?"
윤호진은 마치 웃을 줄 모르는 것처럼 차가운 표정을 하고는 쌀쌀맞게 말했다.
"식당에서 네 남편을 만났을 때, 내가 네가 선임한 이혼 변호사라는 걸 말하지 않았잖아. 그 말은 네가 심지운이 알까 봐 겁난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혼하겠다는 네 결심은 확고하지 않아."
강수연이 설명했다.
"난 그냥 우리 둘 사이가 복잡해서 그랬어, 전 애인이기도 하고 내가 선임한 변호사잖아, 심지운이 우리 둘이 사귀었다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아. 어쩌면 이혼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내가 이혼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난 무조건 심지운이랑 이혼할 거야."
그녀는 말할 때 아주 진지했고 단호했기에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윤호진은 반신반의했다.
"난 흔들리는 사건은 받지 않아, 다른 사람 알아봐."
강수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계속 날 믿지 않는 건데?"
"네 행동에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 자신한테 물어봐야지."
윤호진은 또 덤덤한 말투로 5년 전 일을 들먹거렸다.
강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도 성깔이 있었기에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윤호진을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반박했다.
"넌 네가 믿고 싶은 것만 믿잖아, 본 것만 믿고 난 안 믿잖아, 내 선임받고 싶지 않으면 됐어, 나도 강요하지 않아, 해지할 거면 해."
그녀는 손에 든 슬리퍼를 내려놓고는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윤호진은 아직도 강수연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당당함이 가득했고 전혀 찔리지 않아 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고 머리가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강수연."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윤호진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무조건 이혼할 거야? 그렇다면, 내가 계속 추진할게."
그 말은 그가 이 사건을 계속 맡겠다는 거였다.
강수연은 윤호진이 자신의 체면을 챙기기 위해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의외라고 생각되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심지운이랑 이혼할 거야."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한 순간, 윤호진은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슬리퍼를 보며 무심한 듯 말했다.
"이혼하기로 했으면, 남편한테 자꾸 오라고 하지 마, 최대한 다정한 스킨십도 하지 마, 그래야만 법정에서 두 사람 감정이 완전히 파탄 되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그가 에돌려 말했지만 강수연은 그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지운이 집에 들어온 적 없어, 그리고 걔랑... 슬리퍼는 걔를 위해서 준비한 거 아니야, 우리 집 밖에 있는 신발장에도 남자 신발 있는 거 못 봤어? 혼자 사는 여자는 무조건 집이랑 밖에 남자의 물건을 둬야 안전한 거야."
윤호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
"옆집에 내가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마."
그러자 그의 눈빛에 후회가 스쳤고 다급해서 뒤돌았다.
"갈게."
커다랗고 훤칠한 뒷모습이 왜인지 도망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수연은 그걸 알아보지 못했고, 그 말에도 아무런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윤호진이 성격이 바뀌었지만, 본성이 착한 사람이라, 그녀가 위험에 닥치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윤호진이 자신한테 미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행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진작에 그녀를 버렸을 때... 그녀도 그를 포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