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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

강리나도 그의 말투를 굳이 신경 쓰지 않은 채 휴대폰을 넙죽 건넸다. 휴대폰 화면을 안 보려고 모진 애를 썼지만 불행하게도 발신자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상대는 바로 하은지였다. 성시후는 휴대폰을 건네받을 때 무심한 건지 일부러 노린 건지 손끝으로 살짝 그녀의 손등을 스치며 도발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강리나는 재빨리 손을 거둬들였지만 마음속에 저도 몰래 파도가 일렁였다.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작정하고 끼 부리면 안 넘어갈 여자가 없겠는데?’ ‘끼 좀 그만 부려. 나 사고 칠 것 같단 말이야!’ 한편 전화를 받은 성시후는 좀 전에 강리나와 말할 때의 야유 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없이 자상한 목소리로 변했다. “무슨 일이야?” 하은지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후야, 우리 집에 갑자기 정전됐어. 이리로 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봐줄래?”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봤어?” “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 다들 퇴근한 것 같아. 휴대폰 배터리도 곧 다 나가고 이웃들과도 모르는 사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직 저녁도 못 차렸는데 이대로 있다가 밤에 샤워도 못 하는 거 아니야?” 성시후는 곧장 알겠다며 대답했다. “금방 갈게.” 이 말을 들은 강리나는 시선을 올리고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한편 성시후는 한창 하은지 일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눈빛도 알아채지 못했다. 통화를 마친 후 성시후는 밥을 몇 입 더 먹고 나서야 의자에서 일어나며 느긋하게 말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이따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 강리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네.” 성시후의 눈가에 복잡한 기운이 스쳤다. “그게 다야? 어디 가는지 안 물어봐?” 강리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한 게 아니라 되레 반문했다. “하은지 씨 보러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안 잡아?” “내가 왜 잡아야 하죠?” 성시후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하여 단호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리나야, 난 네 남편이야.” 순간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남편인 걸 알긴 아네?’ ‘아직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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