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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메라의 플래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심지어 라이브 방송까지 진행하는 팬이 있어서 네티즌들이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었다. 살포시 입을 맞추는 남자의 모습은 애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반면, 송연아는 마치 병풍처럼 불필요하게 느껴져 헛웃음만 나왔다. “보셨죠? 아직도 못 믿겠어요?” 이정호는 화가 난 얼굴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 사생팬과 기자들을 가리켰다. “우리 연애사가 듣고 싶어요? 오늘 그 궁금증을 풀어드리죠. 전 중학교 때부터 서우를 짝사랑했고,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 고백해서 8년 동안 만남을 이어왔어요. 그동안 일편단심으로 서우만 사랑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할 것이며, 나랑 만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로지 서우뿐이죠. 다른 여자는 꿈도 꾸지 마세요.” 사생팬과 기자, 그리고 생방송 시청자까지 거창한 고백 현장을 목격했다. 이때, 뜬금없이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흰색 가운을 입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송연아는 전체적으로 청순하고 단아하며 깔끔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웃으면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그녀 때문에 사생팬과 기자들, 그리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덩달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송연아를 바라보는 이정호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제 발 저린 표정을 지었다. “눈물겨운 순정이네요. 두 분 축하드려요.” 송연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정호의 안색이 대뜸 어두워졌다. “네 축하 따위 필요 없어.” 말을 마치고 나서 온서우의 어깨를 감싸 안고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사생팬과 기자, 구경꾼도 뿔뿔이 흩어졌고 진료실은 그제야 조용해졌다. 송연아는 허리를 짚고 앉았다. 방금 부딪힌 부위에서 고통이 밀려왔고 옷을 걷어 올리자 멍이 두 군데 들어 있었다. 오후에 퇴근 시간이 되어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고 확인해보니 누군가 카톡 친구를 추가했다. [서강호.] 송연아는 어리둥절하다가 그제야 문득 생각이 났다. 그동안 연락한 적이 딱 두 번밖에 없었고, 통화로 대화해본 게 전부였다. 어쨌거나 결혼 상대인만큼 카톡 정도는 추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송연아는 대화창을 열었다. 그리고 텅 빈 화면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내 잠깐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끄고 짐을 챙겨 퇴근했다. 오늘은 주간 근무라서 입원실을 한 바퀴 돌고 병원을 나섰더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마침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열리며 임지헌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연아 씨, 오늘 기태네 주점이 오픈하는 날인데 개업식이 있다고 연아 씨 퇴근 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픽업하러 저를 보냈죠.” 그는 ‘일부러’라는 단어를 강조했고 말을 마치고 나서 바보처럼 헤실거렸다. 임지헌과 허기태는 이정호의 소꿉친구라서 그녀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따라서 친구의 부탁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차에 올라타자 임지헌이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다. “서우 생일에 나도 있었어요.” 누그러진 목소리에 죄책감이 묻어났다. 송연아는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온서우의 생일을 축하하는 동영상을 그녀도 봤고, 이정호가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할 때 임지헌은 팔을 번쩍 들고 연신 결혼하라고 외쳤다. “매년 생일이 되면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잖아요. 나도 나지만 정호도 진심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서우가 대답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물론 동의한 데 이유가 있지만 연아 씨에게 불공평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 정호는 진짜 서우를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친구로서 저랑 온서우 중에서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누구를 선택할 건가요?” 임지헌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연아 씨죠.” 송연아가 싱긋 웃었다. “설령 거짓말이라도 기분은 좋네요.” 임지헌이 고개를 저었다. “진심인데... 비록 서우랑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지만 연아 씨랑 노는 게 더 좋아요.” “네, 그래서 저도 지헌 씨가 픽업하러 왔다고 해서 차에 탄 거예요. 하지만 내 앞에서 다시는 이정호를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린 이미 헤어졌거든요.” 임지헌이 혀를 찼다. “사람은 홧김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때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닐지도 몰라요.” 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뜻인즉슨 그녀가 단지 삐져서 그랬을 뿐, 진짜 이정호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는 건가? 허기태가 새로 오픈한 주점은 골목 가장 안쪽에 있다. 담장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가득했고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보였다. 그리고 복도를 장식한 등불 때문에 고즈넉하면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임지헌은 맨 끝 방을 가리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던 찰나 이정호의 욕설이 별안간 들려왔다. “허기태, 그만해!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허기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잘못했어.” “서우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어?” “그럼 연아 씨는...” “송연아는 개뿔도 아니거든? 감히 서우랑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 너 언젠간 후회할 날이 올 거야.” “후회해도 송연아가 해야지. 서우가 나한테 도움을 청할 때마다 헤어지자고 생난리를 치더니 노력이 무색하게 결국에는 뻔뻔스럽게 다시 만나자고 애원했어. 어차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냥 내버려 두면 돼.” “쯧쯧, 연아 씨가 널 좋아한다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은데 사랑은 식어가기 마련이야. 장미꽃 한 송이를 준비했으니까 이따가 선물하면서 연아 씨한테 사과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연아는 심호흡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허기태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연아 씨, 와줘서 고마워요.” 허기태가 주점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녀는 일찌감치 복고양이 장식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개업 축하해요. 대박 나길 바랄게요.” 그리고 선물을 건네주자 허기태가 말했다. “감사해요.” 그는 고개를 돌려 이정호에게 눈짓을 보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쉬고 있어요. 밖에 나가서 손님 좀 접대할게요.” “괜찮아요.” 송연아는 허기태를 따라갔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연아 씨...”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그러고 나서 미안한 표정으로 미소를 살짝 짓고 뒤돌아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다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이정호가 뒤쫓아왔다. “송연아! 대체 언제까지 꽁해 있을 거야?” 이내 가뿐히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설명했잖아. 좋은 말할 때 듣지?” 이정호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송연아는 이정호를 힐긋 쳐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방금 룸에서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어. 물론 내가 비참하게 매달린 건 사실이야. 감히 이성 그룹 둘째 도련님의 옆자리를 탐내다니, 반성할게. 지난 8년 동안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대가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치고 떠나는 그녀를 보자 이정호는 손목을 덥석 붙잡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거 놔!” 이정호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고, 두 눈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잠시 후, 그는 송연아를 끌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네 차 안 탈 거야!” “일단 집에 가자.” “싫어.” “그동안 널 너무 푸대접했나 봐. 감히 나랑 헤어질 생각까지 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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