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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30분 뒤, 잉크를 뒤집어쓴 송연아가 입원 병동에 나타났다. 지나가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를 힐끔댔지만 송연아는 신경 쓰지 않고 곧장 8층에 있는 VIP실로 향했다. 온서우의 병실 문을 연 그녀는 온서우가 병상 위에서 휴대전화를 하고 있는 걸 보았다. 뭘 본 건지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송연아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고 온서우는 본능적으로 송연아를 바라보았다. 미처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 상태였다. “송연아 씨, 이게...” 송연아는 두말하지 않고 잉크를 뿌렸다. 그 순간 침대 옆에 있던 이정호가 몸을 움직여 잉크를 막았고 잉크는 그의 등 뒤에 뿌려졌다. 잉크 때문에 그의 흰 셔츠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꺅!” 온서우는 깜짝 놀랐다. 이정호는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너...” 그는 그제야 송연아가 잉크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발견하고 멈칫했다. “넌 왜 그래?” 송연아는 씩씩댔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고 코도 시큰거렸으며 눈가도 뜨거웠다. 그녀는 성격이 좋은 편이라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경비원 아저씨! 경비원 아저씨, 얼른 여기로 오세요!” 그것은 온서우의 휴대전화에서 전해진 소리였다. 그녀가 조금 전 웃으면서 보던 것이 바로 송연우가 그녀의 팬에 의해 잉크를 뒤집어쓰는 영상이었다. 이정호 역시 영상을 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팬들은 이성적이지 못해. 하지만 서우가 시킨 일도 아니고 왜 그러는 거야?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지.” 경우가 있어야 한다고? 경우 없는 사람이 그녀란 말인가? “그 영상은 짜깁기 된 거야. 뭘 유도하려는 건지 뻔해. 그런데도 온서우 씨 소속사에서 벌인 짓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널 꼬셨다는 루머는 왜 해명하지 않는 건데? 난 온서우 씨 팬에게 공격당했어. 그런데 온서우 씨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거야?” 송연아는 솟구치는 분노로 인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얘기했지. 넌 연예인이 아니라고. 욕 좀 먹으면 뭐 어때? 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텐데!” 이정호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내가 왜 온서우 씨를 대신해서 욕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니까! 그냥 참아!” “이정호!” 송연아는 고함을 질렀다. 순간 숨이 멈추는 것 같으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생애 가장 큰 실수가 바로 너랑 만난 거야!” 이정호는 송연아의 우는 모습을 보고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짜증 난 얼굴로 의자를 찼다. “실수? 하, 그렇지. 실수지.” 송연아는 눈물을 딱 한 방울 떨궜다. 그건 분노 때문이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온서우를 바라보았다. “온서우 씨, 최대한 빨리 해명해서 내 오명을 씻어줬으면 좋겠네요. 그러지 않겠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도록 하죠. 혹시라도 다른 얘기가 나오게 돼서 여론이 또 한 번 들끓는다면 그건 저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알겠죠?” 말을 마친 뒤 송연아는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송연아 씨!” 온서우는 서둘러 그녀를 불렀다. “제 팬을 대신해서 제가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이 일은 그냥 넘어가요. 네?” “온서우 씨 말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겠다고요?” 송연아는 차갑게 웃었다. “난 온서우 씨 개가 아니에요. 그러니 그렇게 쉽게 끝낼 수는 없죠.” 송연우는 성큼성큼 나갔고 이정호가 그녀를 뒤쫓았다. “누굴 보고 개라고 욕하는 거야?” “너!” “송연아, 너...” 송연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 뒤 몸을 돌려 이정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네가 나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 이정호는 피식 웃었다. “어떻게 보이는데?” “온서우 씨 약혼자.” 이정호의 미소가 굳었다. 그는 송연아가 개나 인간 말종에 그를 비유하면서 욕할 줄 알았다. 송연아는 화가 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송연아는 평온한 얼굴로 그를 온서우의 약혼자라고 했다. 송연아의 누군가가 아니라 온서우의 약혼자 말이다. “그래서?” 이정호가 물었다. “그러니까.” 송연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둘 사이의 거리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나한테 뭔가 지시하려고 하지 마. 가르치려고 들지도 말고. 거리를 좀 두자고. 알겠어?” 이 정도 거리로는 부족했다. 송연아는 계속 물러섰다. 이정호의 두 눈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송연아가 점점 뒤로 물러나면서 낯선 사람처럼 구는 걸 지켜보았다. 오후가 되자 온서우가 직접 입장을 밝혔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제 팬을 대신하여 송 선생님께 사과하겠습니다. 팬들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절 위한다는 이유로 이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일은 제가 처리할 겁니다. 송 선생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이 사과가 송 선생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일은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랑 제 약혼자는 늘 사이가 좋았어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 결혼식을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여러분.] 조슬기는 그걸 읽고 곧바로 욕했다. “이게 무슨 해명이에요? 끝까지 피해자인 척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억울해 죽겠지만 나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고 약혼자와도 사이가 좋아서 제삼자의 영향은 받지 않을 거라는 뜻이잖아요.” 조슬기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씩씩댔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 글을 짓밟고 싶었다. “하, 이것 봐요. 사진까지 올렸네요.” 조슬기는 송연아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온서우는 양반다리를 하고 병상 위에 앉아 있었고,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초췌한 얼굴로 웃고 있었는데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빛이 창문을 통해 그녀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의 옷과 이불 위에 잉크가 묻어 있다는 점이었다. 게시물 아래 댓글들은 욕으로 가득했다. [정말 천박한 여자네요. 잉크를 맞을 만했어요. 제가 그 팬이었으면 잉크가 아니라 똥물을 뿌렸을 거예요!]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꼬시고 돈까지 뜯어내려고 했잖아요. 돈도 받았으면서 이딴 짓을 하다니, 어떻게 저런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죠?] [우리 서우 언니가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뻐서 따지지 않은 건데 이렇게 선을 넘다니, 용납할 수가 없네요. 감히 우리 서우 언니에게 잉크를 뿌리다니, 팬으로서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잖아요. 밤길 조심해요.] 송연아는 괜찮았지만 오히려 조슬기가 매우 화를 내면서 가슴팍을 내리쳤다. “진짜 속 터져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못될 수가 있죠?” 송연아는 해명 같지 않은 해명과 사진, 그리고 욕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주 차분했다. 사실 그녀는 온서우가 쉽게 그녀의 오명을 씻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했었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서강호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누가 절 욕했거든요. 그래서 두 배로 욕해줬죠. 그런데 또 절 욕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때렸어요. 그 사람은 자기가 우위라고 생각해서 제멋대로 날뛰었지만 사실 힘은 제가 더 세거든요. 그래서 힘으로 제압했어요.] 송연아는 어리둥절했다. 이런 문자를 보낸 그의 의도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로 싸운 거예요?] [오늘 느낀 바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말 저랑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빨간 줄이 그어졌거든요.] [네?] [나온 뒤로는 아무도 절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조슬기는 일을 마치고 왔다가 송연아가 휴대전화를 들고 넋을 놓고 있는 걸 보았다. “그냥 넘어가는 건 어때요? 온서우 씨 뒤에는 소속사가 있잖아요. 선생님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일 거예요.” 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갤러리를 뒤져서 사진 한 장을 선택한 뒤 그걸 SNS 계정에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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