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전에는 이러한 생각들을 떠올린 적이 없었는데 강시준의 말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추억들이 영화 장면들처럼 재생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훈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이 오빠한테 말해줄 수 없는 거야?”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강시준은 재차 물음을 던졌다.
계속 침묵만 지키고 있으면 강시준은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거라 생각할 테고 또 며칠 뒤면 강지훈의 부모님도 뵈러 가야 되는데 차라리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고 추후의 번거로움을 마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한테 다른 여자가 있어.”
그 말에 강시준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것도 친구의 와이프였어. 미연 이모하고 석진 삼촌도 알고 있는 사실이야.”
강시준이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자 내가 말을 덧붙였다.
“오빠도 알고 있었던 거지?”
세상에 비밀이 없듯이 강시준은 나하고 강지훈이 파혼을 한 이상 어떻게 된 영문인지 조사를 했을 게 뻔한 미연 이모하고 석진 삼촌한테 사건의 전황을 물어봤을 것이다.
“지훈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절대 그럴 리 없어. 중간에 무슨 오해가 있었겠지.”
내가 강지훈을 사랑한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는 강지훈이 나를 엄청나게 사랑한다니...
하긴 그도 그러할 것이 강시준하고 같이 지냈던 그때로 돌아가 보면 강지훈은 나를 늘 여보라고 칭하며 다른 남자와의 어떠한 접촉도 용납하지 못했었다. 더욱 심각했던 건 강시준하고 사이가 가까워지는 걸 볼 때마저도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
“오빠, 사람은 변할 수가 있는 거야.”
그 말을 마친 순간 문밖에서 힘찬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정정한 사람의 그림자가 문밖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마당에서 집주인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우야, 들어온 거야?”
아마도 내가 바꾸고 싶어 하던 그 방의 세입자인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한 부탁대로 어르신이 그 세입자의 의향을 물어봤었나 보다.
그 세입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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