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장

‘한아진한테 사과하라고?’ 정은지는 귀를 의심했다. 죽었다 깨도 절대 사과할 일은 없다. “싫어? 싫으면 애초에 똑바로 행실을 했어야지.” 여아린의 표정이 눈에 거슬렸다. 정은지는 화나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앞으로 한 발짝 나섰고 더 싸워 보려 했다. 그때였다. 여준수가 정은지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었다. “은지 씨 아닙니다.” “오빠?” 여준수의 말에 여아린은 당황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미간을 좁히며 투덜댔다. “정은지를 감싸지 마. 분명 정은지가 잘못한 거 맞단 말이야.” 그는 여아린의 말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주위 사람들한테 설명했다. “아까 제가 은지 씨 팔을 잡고 있었거든요. 얼마만큼의 힘을 썼는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일부러 밀쳤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고요.” 그러고 나서 그는 한아진을 쳐다봤다. 남자의 짙은 눈매는 알 수 없는 의미로 어두워져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한아진 씨?” 한아진은 놀라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머리를 재빨리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 맞아요. 은지 때문은 아니에요.” 당사자가 부정하자 여아린은 얼굴이 뜨거워 났다. 주위의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아진의 아버지가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달려왔다. 여준수 앞으로 오면서 그는 낮은 자태로 잇달아 사과했다. “여 대표님,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우리 아진이 소란스럽게 만들어버려 제가 아비로써 사죄드립니다.” 깊이 굽혀 내려간 남자의 허리를 보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계속 잡고 넘어가지 않으면 오히려 여준수의 풍평에 금이 갈 수도 있으니, 정은지도 일을 남기려 했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아진이가 오해라고 했으니 오해 맞겠죠. 그것보다 객실로 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요. 물기도 닦아내고요.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네요” 정은지는 절친을 걱정하는 얼굴로 사람을 불러 한아진을 부탁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기 전 한아진은 뒤를 돌아보며 몰래 정은지를 째려보았다. 너무 괘씸했다. 여준수가 뛰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