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싸늘해진 분위기에 민연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혹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주제를 바꾸시지요. 지난번에도 썼던 것이 아니던가요. 이제는 지긋지긋하군요.”
내가 동궁에 심어 놓은 사람들의 행보도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민연아에게 붙어 이제 곧 그녀의 측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신뢰를 얻지는 못했으나 예전보다 훨씬 정확한 정보들이 손에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민연아가 이번 시회의 주제를 미리 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주제가 무엇인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시연에게 넌지시 일러두어 그녀가 나세령에게 슬쩍 귀띔하게 했다. 그리하여 미리 시를 써두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의 말을 들은 민연아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의 당혹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시를 지어낼 수는 있겠지만 미리 준비한 것만큼 능숙하고 노련한 문장이 나올 리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그 주제를 반대했기에 민연아는 할 수 없이 비슷한 다른 주제로 바꾸어야 했다.
그러나 나세령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니, 이미 써 보았다니까요. 비슷한 것도 재미없습니다. 주제를 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우시다면 차라리 제가 정하겠습니다.”
민연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세령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까운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꽃, 곱게 피었네요. 오늘의 주제는 저걸로 하시죠.”
사람들은 하나둘씩 시를 짓기 시작했다.
민연아는 평소처럼 은근한 연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나세령은 얌전한 다른 아가씨들과는 달랐고 이내 민연아를 향해 성을 냈다.
“시 짓는 게 무슨 귀신 들린 것도 아니고, 조용히 좀 하시지요! 소리 때문에 영감이 떠오르질 않잖아요. 쓸 거면 조용히 쓰고 아니면 당장 나가세요.”
민연아도 본디 순한 성격이 아니었다.
나세령에게 연거푸 핀잔을 듣게 되자 아무리 자신을 다독여도 속에서 끓는 분노는 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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