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민연아는 호화로운 정원을 통째로 빌려 시회의 주최를 맡았다. 회원들에게는 가족들까지 함께 와 즐기라며 열성적으로 권했고 모든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겉보기엔 크나큰 배려 같았지만 나세령을 비롯한 부녀시회 상류층 여인들에게는 별 감흥 없는 제안이었다.
장소도 나쁘지 않았고 음식도 제법 갖추어져 있었지만 이런 잔치는 그들에게 익숙한 일상에 불과했다. 굳이 베푸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회장의 체면을 봐서 마지못해 자리를 지킨 것이지, 그런 자리에 진심으로 가고 싶어 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상류층 여인들의 얼굴에는 은근한 불쾌함이 어른거렸고 나 역시 가족들 틈에 섞여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었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민연아 또한 눈치 못 챘을 리 없었다.
잠시 그녀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으나 이내 억지 미소를 띠며 애써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민연아는 지금 청초하고 재능 있는 여인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아직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망쳐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훗날 세자빈, 나아가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때는 반드시 이들을 하나하나 응징할 터였다.
이번 시회는 지난번처럼 외부의 구경꾼이 많이 드나들지는 않았다.
상류층 여인들과의 친분을 위해 모인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민연아의 실물을 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시중드는 하인들은 여전히 많아서 북적이는 분위기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진시연은 내 옆에 앉아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잣을 까먹으며 슬쩍 속삭였다.
“공주님의 영의정 대감은 왜 안 온 겁니까?”
나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말조심하세요. 앞에 표현은 빼고 부릅시다.”
진시연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그렇게 부르도록 하죠. 그나저나 왜 안 온 겁니까?”
나는 짧게 대꾸했다.
“너무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 뒤에서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수수한 옷을 입히고 눈가리개로 얼굴을 가려도 송유빈의 기품과 풍채는 감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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