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고현준은 원래 있던 룸으로 돌아왔다.
노태윤은 친구의 잘생긴 얼굴에 손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고현준은 얼굴에 자국이 남을 줄 몰랐지만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거짓말을 했다.
“고양이한테 할퀴었어.”
“안씨 성을 가진 고양이?”
노태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놀렸다.
고현준이 그를 흘겨보자 그는 더 편한 자세로 앉아 고현준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희연이한테 도대체 어떤 생각이냐? 그냥 장난이라고 해도 3년이나 놀았으면 이제 질릴 때도 됐잖아.”
룸 안의 다른 남자들은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여자들과 진한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고현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가를 다시 물었다.
‘그래, 이제 질릴 때도 됐지. 그래서 서둘러 이혼하고 싶어 하는 거구나.’
노태윤은 흥이 깨져 근처에서 눈치를 보던 여성 접대부를 불렀다. 접대부는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달려왔다.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다른 아가씨도 고현준의 옆에 앉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 대표님...”
고현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훑어보았다.
여자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기쁜 마음에 손을 들어 남자에게 기대려고 했다.
“꺼져.”
고현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주위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고 대표님, 전... 전 깨끗해요...”
여자는 손을 뻗은 채 얼어붙었다가 옆으로 비켜났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숙이며 말했다.
“제가 예쁘지 않아서 그러세요?”
조명 아래 드러난 고현준의 얼굴에는 신사적인 가면이 벗겨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마치 사람을 산 채로 찢어 죽일 듯 차가웠다.
여자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노태윤을 바라보며 그가 자신을 위해 변명해 주기를 바랐다.
노태윤은 옆에 있는 여자를 껴안고 바람둥이처럼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넌 쟤 와이프와는 비교도 안 돼.”
...
“어떻게 됐어? 고현준이 널 어떻게 하진 않았어?”
나미래는 테이블에서 안희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안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언제 어떻게 보복해 올지 알 수 없어 마음에 걸리긴 했다.
나미래는 휴대폰을 켜서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희연아, 이 옥 팔찌 너희 엄마 거 아니야? 다음 달 경성 경매에 나온다는데.”
사진에는 임페리얼 그린 옥 팔찌가 있었다. 색깔이 맑고 투명한 것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 팔찌는 안희연의 외할머니가 남긴 유품으로 수백 년 전 황실에서 하사한 가보이자 안희연의 어머니가 생전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다.
처음에 안영해는 어머니를 그리워 할거라는 핑계로 어머니의 유품을 남겼는데 그 팔찌가 지금 경매에 나온 것이다.
안희연은 화가 나서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2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안씨 가문과 협상할 무기가 필요했다.
“미래야, 먼저 가. 나 현준이 만나야겠어.”
나미래는 그녀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
갑자기 룸 문이 열렸다.
아름다운 외모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롱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안희연?”
“쟤 왜 또 왔어?”
사람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안희연은 소파 한가운데 앉아 있는 고현준을 발견했다.
그녀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그녀의 목표가 너무 뚜렷했던 탓인지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요염한 여자는 곧바로 일어서서 경계하며 막아섰다.
“아가씨, 뭐 하는 거예요?”
안희연은 그녀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얼굴은 예뻤지만 눈가에 억지로 꾸며낸 순진한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다.
안희연은 여자의 뒤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아가씨, 먹이 그릇을 지키기 전에 주인이 누군지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텐데요.”
“누굴 개로 아는 거야!”
요염한 여자는 화가 나서 가식적인 목소리가 유지되지 않았다.
노태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텐데, 누가 대답하든 스스로를 개로 만드는 꼴이었다. 정말 생각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고현준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면서도 고귀한 자세로 앉아 위스키 잔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안희연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몇몇 남자들이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무슨 일로 안희연 씨가 또 납셨대? 설마 남편 감시하러 온 건가?”
“솔직히 희연아, 우리 다 알잖아. 네가 어떻게 현준 형이랑 결혼했는지. 적당히 해.”
“희연아,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너무 나대지 않는 게 좋아.”
...
요염한 여자는 그 말에 더욱 우쭐해져 가슴을 내밀었다.
“웬 감시?”
안희연은 가볍게 웃으며 요염한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다들 고 대표님께 이런 여자를 소개해 준 거야? 나만도 못한데 고 대표님의 마음에 들기나 하겠어?”
너만도 못하다니?
외모만 놓고 보면 안희연은 사교계에서 탑급이었다.
남자들은 그 말에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안희연은 고현준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아내를 조금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희연은 악에 받쳐 요염한 여자를 밀치고 테이블을 돌아 순식간에 고현준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하얀 새틴 드레스가 그녀의 다리를 완전히 가렸고 무릎에 앉는 자세 때문에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라인이 더욱 강조되어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밖에서는 항상 조신하던 안희연의 돌발 행동에 고현준은 순간 당황했지만 반사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 주었다.
“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그의 얼굴에 바싹 다가갔다. 코끝이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눈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고 대표님, 벌써 이렇게 조급해지신 건가요?”
고현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차갑게 굳어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희연이 고현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것만 볼 수 있었을 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모두들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았다.
오직 안희연의 나긋한 웃음소리만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옆의 요염한 여자를 흘끗 보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저 여자는 안 된다고 했잖아!”
요염한 여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금 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젠장.”
고현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감정을 억누르느라 약간 갈라져 있었다.
“내려와!”
그는 안희연에게 차갑게 소리쳤다.
안희연은 종아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하이힐을 신은 발을 보여주고는 능글맞게 말했다.
“발 아파.”
남자는 목울대를 꿀꺽 삼키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안희연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에 매달렸다.
“악! 고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