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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누가 고씨 가문 사람들에게 말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화가 난 안수지가 언성을 높였다. “아, 이번엔 고현준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걸 부정하지 않네?” 안희연이 웃으며 말했다. “안희연!” “나한테 쓸모 있는 정보 말해주지 않을 거면 이혼 상황은 고현준한테 가서 직접 물어봐.” 씩씩거리는 안수지를 뒤로하고 안희연은 조용히 안수지의 말을 곱씹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던 안수지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일이 터지기 전엔 아무도 고씨 가문에서 평판이 엉망인 여자를 데려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3년 전 고씨 가문에 알린 사람이 안수지가 아니라면 누구일까. 대표인 고현준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 탓에 안수지는 오래 머물지 못했고, 이내 법무팀장 진성호가 서류에 사인을 받으러 고현준을 찾아왔다. 안수지를 본 진성호가 놀라는 대신 공손한 태도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걸 보아 그저 평범한 상사의 친구를 대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안희연은 안수지의 의도적으로 과시하던 말이 떠올라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금방 감정을 추스르고 을인 입장에서 침착하게 전남편이 될 사람에게 해답을 건넸다. 진성호는 이 또한 자신의 업무 범위 내에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함께 경청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바라보는 상사의 눈빛이 다소 서늘했다. “대표님, 남은 두 가지 보류된 질문은 저희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확인을 받아야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안희연이 노트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리고 제 신분으로는 대표님과 직접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으니 다음엔 더 급이 높은 동료에게 업무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진 팀장님.” 또다시 여기서 안수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진성호는 얼떨결에 이름이 불리워 저도 모르게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 말에 싸늘한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지자 진성호는 말을 바꾸었다. “생각해 보죠.” “...” 고현준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무심한 표정으로 진성호를 바라보았다. “안 변호사님이 가운데서 충분히 역할을 잘 해낼 것 같아요. 표현력이 좋고 전문 지식도 풍부해서 팀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아요.” 누가 보면 진심인 줄 알겠다. “사실 저는 아직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어요.” “정말요? 전혀 몰랐어요. 역시 제도대학은 전국 최고의 학교라니까요.” “...” 참 억지스러운 칭찬이다. “안희연 씨, 다음에도 그쪽이 나한테 보고했으면 좋겠는데.” 고현준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파트너들에게도 이 의사를 전달하죠.” 안희연은 도저히 웃을 수가 없어 노트를 책상에 탁 내려놓고 화가 난 어투로 말했다. “대표님,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은...” 고현준이 천천히 한 단어를 뱉었다. “못생겨서.” “이건 억지예요!” 고현준은 침착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며 안희연에게 되물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습니까?” 진성호는 놀란 얼굴로 상사와 을인 인턴을 번갈아 보았다. 변호사팀에 못생긴 사람이 어디 있나,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뻤다. ‘잠깐, 지금 대표님한테 억지라고? 대표님은 또 이제 알았냐고 대꾸하네. 두 사람 대체... 뭐지?’ 진성호는 뭔가 대단한 비밀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대표님은 안수지와 만나는 사이가 아니던가. 의자에 앉은 남자는 여유롭게 승리를 거머쥔 표정으로 군림해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볼수록 화가 난 안희연이 진성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 팀장님, 대표님하고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죠?” 진성호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대표님과 단둘이 할 얘기라... ‘진도가 이렇게 빨라? 안수지가 방금 나갔는데?’ 진성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상사를 바라보다가 고현준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홀연히 자리를 뜨며 안희연을 슬쩍 바라보았다. ‘세상에, 언제 꼬신 거야?’ “고현준 씨, 대체 왜 이래?” 안희연은 심호흡하며 최대한 진정하려고 애썼다. “이젠 모르는 척 안 하네?” 고현준이 묻자 안희연은 차갑게 웃었다. “진 팀장님은 내가 대표님 새 애인인 줄 알 거야.” 고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그에게 애인 따위가 있었던가. “그건 됐고.” 자리에 서 있던 안희연은 넓은 책상을 두 손으로 짚으며 앉아있는 고현준을 내려다보았다. “대표님, 그쪽 개인 변호사는 언제 저와 이혼 상담을 하신대요? 정 힘들면 차라리 오늘 하죠.” “유런에 있어. 바빠.” 고현준의 말투는 마치 철없는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매우 차분했다. “몽실아, 왜 투정을 부려?” “내가 투정을 부린다고?” 안희연은 기가 막혀 웃음이 터졌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놓고 시간이나 끌면서 이혼을 안 하는데 그럼 화가 안 나? 고현준 대표님, 난 빨리 이혼해야겠다고!” 안희연의 마지막 말에 고현준은 마침내 표정이 싸늘해졌다. 차분한 가면을 벗어던지자 차갑고 강압적인 권위자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순식간에 안희연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 기생오라비가 못 기다리겠대?” “어느 기생오라비?” 안희연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고현준은 시선을 내린 채 피식 웃었다. “그새 새 남자가 생겼어? 빠르네.” 그제야 안희연은 선배를 새로 만나는 사람으로 얘기한 게 떠올랐다. ‘기생오라비라고 해라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급한 거야.” ‘허, 서둘러 명분을 주려고 싸고도는 꼴이란.’ 고현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층 굳어진 표정이었다. “안희연,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 진심으로 누굴 좋아한 적은 있어?” 안희연은 중학교 때부터 좋다는 남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성격이 좋고 얼굴도 예쁜 데다 누구에게나 착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 고현준은 그녀가 대체 누구와 만나는지 알지 못했고, 한 지붕 아래 살던 언니 안수지조차 언제 남자가 바뀌었는지 몰랐다. “확실히 글로레 급 광고를 안수지에게 주는 대표님만큼은 못 되네요.” 손뼉을 치던 안희연이 웃으며 칭찬했다. “안수지라면 대표님은 언제나 아낌없이 퍼부어 주시잖아요.” 안수지는 손 부상으로 피아노와 인연을 끊은 후 방송 캐스터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 때는 고성그룹이 투자하는 예능 프로그램 두 개에서 특별 MC로 활약했고, 졸업 후엔 고성그룹에서 전적으로 투자해 그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었다. 졸업한 지 2년도 안 돼서 안수지는 제법 유명세가 있는 진행자가 되었다. 이제 막 유명세를 치른 진행자가 명품 브랜드 광고까지 맡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 또 한 번 몸값이 대거 상승했다. 이 모든 게 사실은 고현준이 안수지에게 깔아준 레드카펫이었다. 고현준은 뭔가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거야? 광고를 원하면 내가...” “그만.” 가식적인 미소조차 짓기 싫어 안희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현준의 말을 끊었다. 그깟 광고 모델 따위 누가 원한다고, 법대생인 그녀가 무슨 광고 모델 자리가 필요하겠나. 남자는 단지 그걸 빌미로 그녀의 입을 막으려는 거다. 차갑게 고현준을 바라보던 안희연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그에게 돌아갔다. 여자의 가녀린 손끝이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며 작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고현준은 똑바로 앉아 안희연이 그의 몸에 올라타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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