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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에이, 무슨. 걔랑 두세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데. 밖에 걔한테 ‘지갑 아저씨'라고 부르는 여자가 얼마인지 몰라.” 나미래와 하정찬은 급하게 정략결혼을 했는데 상황은 그녀와 고현준 커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안희연이 물었다. “하정찬은 남쪽 지사에서 아직도 안 돌아온 거야? 거의 반년이나 됐잖아.” “몰라. 나랑 걔는 쇼윈도 부부잖아. 서로 안 건드리는 게 기본 예의지.” 나미래는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너 고현준이랑 이혼 서류는 작성했어?” “아직.” 안희연은 이번 주에 고현준과 비교적 잘 지냈기에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 주에 현준 씨를 몇 번 만났는데 나름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겠더라. 어쩌면 이혼하고 나서도... 어느 정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미래는 안희연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너랑 걔랑 평화롭게 지내는 게 당연하지. 너 어릴 때 천둥 무서워하면 옆에서 같이 자준 게 누군데? 너 길 잃었을 때 찾아준 것도 걔잖아.” “나미래 씨, 그건 돌봐준 거잖아! 돌봐준 거! 이상하게 말하지 마! 난 그때 경주 오빠 찾으러 간 거였고 경주 오빠가 없어서 걔한테 간 거라고!” 안희연은 입을 삐죽였다. 게다가 고현준은 그녀가 어리광이 심하고 귀찮다고 하면서 어릴 때부터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 월요일, 변호사팀은 오전 내내 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손형복이 안희연을 불렀다. “희연 씨, 사장실에 좀 가 봐. 고 대표님께서 뭐 좀 물어보시려나 봐.” “제가요?” 안희연은 고현준에게 배운 직장 생활 상식을 떠올렸다. “저는 겨우 인턴인데 대표님을 뵙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손형복은 안희연을 훑어보았다. “가기 싫어?” 안희연은 마치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가기 싫어 죽겠다고!’ 손형복은 계획서를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다 바쁘잖아. 시키는 대로 좀 해!” 안희연: “...” ‘내 말은 소귀에 경 읽기였잖아?’ ... 사장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문은 닫히지 않았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희연은 문을 두 번 노크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살며시 문을 밀었다. 사장 자리에는 긴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리고 화려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디올의 빨간색 새틴 드레스를 입고 목에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한 모습은 아름다움과 관능미를 동시에 발산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희연이?” 안수지는 안희연을 보고 놀란 눈을 하더니, 곧 반갑게 일어섰다. “너 여기서 뭐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이 순간, 안희연은 월요병에 걸린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재수 없네! 안수지는 안희연이 오해할까 봐 두렵다는 듯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는 문이 닫힌 휴게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준이를 찾아? 옷 갈아입고 있어. 잠깐 기다려.” ‘대낮에 무슨 옷을 갈아입는다는 거야? 떳떳하지 못한 짓이라도 한 건가.’ 안희연은 비꼬듯 물었다. “여기서 안주인처럼 행동해도 괜찮아? 직원들이 보면 어쩌려고?” 안수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전에도 몇 번 마주친 적 있는데 다들 나랑 현준이랑 친한 거 알아서 괜찮아.” 어쩐지 고현준의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더라니. 안희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수지는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전에 현준이 시중드는 거 힘들다고 했잖아. 근데 난 괜찮던데?” 안희연은 쓰레기통에 구겨진 휴지 뭉치를 보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역시 방금 전까지... 그때 휴게실 문이 열렸다. 키 크고 다리 긴 남자가 소매를 정리하며 걸어 나왔다. 안희연을 보자 그는 아주 잠깐 멈칫했다. “두 사람 방해해서 미안해.” 안희연은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안 변.” 고현준은 그녀를 불러 세우며 자신의 갑의 위치를 은근히 드러냈다. 안희연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해! 곧 전남편이 될 사람이랑 괜히 신경 쓰지 말자!’ 그러고는 돌아서서 고현준에게 가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미인을 앞에 두셨으니 저 같은 건 만나고 싶지 않으실 줄 알았죠.” 고현준이 말하기도 전에 안수지가 부드럽게 물었다. “현준아, 나 희연이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마침 국제 전화를 해야 했던 고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들고 사장실을 나갔다. 오후의 햇살이 통유리를 통해 쏟아졌지만 안희연은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안희연은 안수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마디 말로 고현준 같은 대표님을 사무실에서 내보내다니 말이다. “손은 멀쩡해 보이네. 연기 잘하더라.” 안희연은 그녀의 손을 흘끗 봤다. 안수지는 가볍게 웃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네 덕분에 손은 괜찮은데, 발목이 며칠 아팠어.” “그래? 좋은 소식이네.” 안수지는 안희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안희연의 어머니는 4분의 1의 A 국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 안희연은 아주 예뻤다. 서양 미인의 입체적인 이목구비와 동양 미인의 우아한 분위기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맑고 똘망똘망한 눈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는데 온화할 때는 순수하고 청순해 보였고 날카로울 때는 예리하고 차가워 보였다. 게다가 공부도 잘해서 시험이나 각종 대회에서 1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안희연은 또래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다. 다행히, 정신병원에 들어가면서 그 모든 게 끝났지만. “희연아, 너 현준이랑 언제 이혼할 거야?” 안수지가 물었다. 안희연은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애간장을 태웠다. 안수지는 평소와 달리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설마 너 현준이랑 이혼하기 싫어진 거야?” 안희연은 의아한 눈길로 안수지를 바라보며 그녀의 추측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자리 뺏어서 현준이랑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난 거야?” 안희연은 책상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너 이렇게까지 추잡하게 굴진 않았는데 왜 이래? 경쟁자가 나타나서 겁먹었니?” 안수지는 그 말에 숨이 턱 막히는 듯했지만 곧 차가운 눈빛으로 안희연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네 연애사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사실 안수지가 고현준을 찾아온 건 광고 모델 건 때문이 아니었다. 고현준이 안씨 가문의 두 건의 큰 계약을 중단시키자 안영해가 안수지를 보내 고현준에게 잘 이야기해 보라고 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왜 안희연에게 부탁하지 않았을까? 계약은 안희연이 안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운 후에 취소되었다. 그래서 안영해뿐만 아니라 안수지도 그게 고현준이 안영해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것을 느꼈다. 안희연의 뺨을 때린 것에 대한 경고 말이다. 고현준이 안희연을 감싸고 돈다는 사실에 안수지는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수지야, 우리 거래 하나 할까?” 안희연도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3년 전에 누가 고현준의 집안 어른들한테 호텔로 오라고 알려줬는지 말해 줘. 그럼 내가 언제 이혼할 건지 알려줄게. 고현준이 너랑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려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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