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당신이 할아버지를 죽인 거야
윤재욱은 믿기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송강태의 눈꺼풀을 들어 본 뒤 그의 맥을 짚고 숨결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간호 의자 위에 철퍼덕 앉았다.
‘죽었어. 정말로 죽었어.’
송아영은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윤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를 살렸다면서요?”
윤재욱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침착해졌다.
그는 중해시 최고 신의라는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하강우를 손가락질하면서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
“저놈입니다! 저 촌놈이 쓸데없이 입을 놀린 탓에 아가씨 할아버지가 죽은 겁니다.”
“핑계를 대도 그럴싸한 핑계를 대셔야죠. 송 대표님이 당신 말을 믿을 정도로 멍청한 줄 아세요?”
“중해시 최고 신의인 내가 왜 너처럼 별 볼 일 없는 놈에게 누명을 씌우겠어? 나한테는 근거가 있다고!”
“근거요? 무슨 근거가 있는데요?”
“송 회장님은 조금 전에 내가 살려내서 병상에서 조금만 쉬면 곧바로 깨어날 수 있었어. 그런데 송 회장님이 정신을 차리기 직전에 네가 저주를 내려서 송 회장님을 죽인 거야. 그러니까 네가 송 회장님을 죽인 거지!”
“송 회장님이 죽었다고 확신하시는 건가요?”
“맥박이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으니 당연히 죽었지!”
“송 회장님은 죽지 않았어요. 아직 살아있습니다.”
하강우의 말에 송아영의 절망 어린 눈빛이 다시금 희망으로 반짝였다.
“할아버지가 죽지 않았다고?”
이소희는 참다못해 하강우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이 촌놈아, 그 입 좀 다물어! 회장님 조금 전까지는 살아계셨어. 그런데 당신이 죽었다고 해서 죽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또 살아있다고?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꾸면서 송 대표님 관심을 끌어 보려는 거지?”
윤재욱은 송강태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도 조금 전에 너무 티 나게 누명을 씌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송강태를 살펴보았고, 장 원장더러 여러 가지 의료 설비로 검진해 보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같은 결론을 얻었다.
송강태는 죽었다.
하강우는 들고 온 쇼핑백 안에서 담배갑보다는 조금 작은, 녹이 쓴 상자를 하나 꺼냈다.
상자를 열자 안에 7개의 거무칙칙한 색깔의 침이 들어있었는데 자수 바늘 같아 보였다.
그것은 노인이 그에게 주었던 칠용 침이었다.
하강우는 까만 침들을 꺼내더니 다짜고짜 송강태의 몸에 침을 놓으려 했다.
이소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곧바로 하강우를 향해 호통을 쳤다.
“뭐 하려는 거야?”
“사람 살리려는 건데요.”
“사람을 살리려는 거라고? 윤 선생님의 기린금침으로도 살리지 못했는데 촌놈인 당신이 무슨 수로? 감히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것처럼 까맣고 지저분한 침을 회장님 몸에 꽂으려고 해?”
김수호가 차갑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사람을 살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비서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송아영에게 잘 보이려고 나대는 거겠지. 살리지 못해도 자기 탓은 아니니까, 그러다가 혹시라도 살리면 엄청난 공을 세우는 거니까 말이야.”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송 회장님은 이미 돌아가셨어요. 신의라고 해도 절대 살릴 수 없죠. 개나 소나 침을 놔서 송 회장님을 살릴 수 있다면 의사는 왜 있겠습니까?”
윤재욱은 장담했다.
“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회장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살릴 수 없어요. 조금 전에 의사들이 병원의 최첨단 기계들로 검진을 해봤는데 심장도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았어요. 모든 신체 기관이 활동을 멈춰서 완전히 죽었다고 볼 수 있죠.”
장 원장이 결론을 내렸다.
윤재욱과 장 원장의 말에 이소희는 하강우가 송아영에게 잘 보이려고 나대는 것이라고 더욱더 확신했다.
그녀는 문을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꺼져!”
하강우는 당연히 꺼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송아영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5분 남았어요. 만약 5분 내로 첫 번째 침을 놓지 않는다면 송 회장님은 정말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윤 선생님도 살리지 못했는데 하 비서가 살릴 수 있다고?”
송아영은 하강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네.”
“믿지 마세요. 헛소리하는 게 틀림없어요. 대표님에게 잘 보이려고 허풍을 떠는 거예요. 대표님, 절대 속지 마세요. 이건 회장님을 해치는 일이라고요!”
이소희는 송아영을 설득하면서 하강우를 문밖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하강우는 목석처럼 그곳에 떡하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따.
“나가! 지금 당장 나가라고!”
이소희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장 원장님과 윤 선생님 말대로 회장님께서 이미 돌아가셨다면, 제가 회장님을 어떻게 해치겠어요?”
“그... 시체를 모욕하겠다는 거야?”
“시체를 모욕하다뇨? 전 송 대표님 비서예요. 제가 송 대표님 앞에서 송 회장님 시체를 모욕해서 얻는 게 뭐가 있죠?”
하강우는 송아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송아영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송 대표님, 저한테 수습 기간 1년 주신다고 하셨죠? 제가 대표님 할아버지를 살리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 해고하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