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젊은이
김수호는 일부러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가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여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말이다.
송아영은 매사에 신중했다. 계약을 어긴 대가로 위약금을 줘야 한다면 한스 그룹이 재정난에 빠지긴 하겠지만 송씨 가문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위약금의 10배를 줘야 한다면 송씨 가문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
송씨 가문이 망하게 되면 송아영은 결국 그의 장난감이 될 것이다.
송아영은 드디어 인심 병원 쪽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송아영은 그 사람이 전화를 받은 이유가, 조금 전 김수호가 그에게 몰래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전화를 끊은 뒤 송아영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하, 김수호. 이런 짓을 벌이다니, 너 정말 유치하구나. 정말 우스워.”
송아영은 단상 위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더니 정중한 태도로 사람들을 향해 장담했다.
“여러분, 오늘 한스 그룹이 인심 병원과 계약하지 못한다면 송씨 가문에서 10배의 위약금을 배상하겠습니다. 그러니 초조해하지 마세요. 계약식과 기자회견은 잠시 뒤 시간 맞춰 시작될 것입니다.”
송아영이 말했다.
이때 미인들이 일제히 외쳤다.
“환영합니다, 윤기태 관장님.”
윤기태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심 병원 직원들도 도착했다. 그중에는 송아영과 연락했었던 진 비서도 있었다.
송아영은 서둘러 그들을 맞이하며 물었다.
“진 비서님, 손 회장님은요?”
“손 회장님은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오늘 계약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겁니다. 중해에서의 인심 병원의 일은 손 회장님의 제자인 윤기태 관장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질 겁니다.”
송아영은 서둘러 손을 뻗으면서 적극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윤 관장님, 안녕하세요!”
윤기태는 그녀를 무시하고 김수호의 앞으로 걸어갔다.
“김수호 도련님, 인심 병원과 YS그룹이 전략적 제휴 계약을 맺게 되었네요. 저희 함께 노력해서 중해시 시장을 손에 넣읍시다.”
조용하던 현장이 순식간에 들끓었다.
송아영은 당황했다.
“진 비서님, 조금 전에 저와 연락하실 때 오늘 계약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문제가 없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전 한스 그룹과 계약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송아영은 너무 화가 나서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애써 울음을 참았다.
유유자적하게 있던 하강우는 이때 갑자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사부님, 어디 계십니까? 저희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 오늘 오후에 바로 제경으로 돌아가 봐야 하는데 떠나기 전 사부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싶습니다.]
[컨벤션 센터에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3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하강우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자 이소희는 버럭 화를 내면서 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휴대전화를 만지작대고 있어?”
“10시 30분이잖아요. 계약식 시작 전까지 30분 남았을 텐데요.”
“이...”
이소희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촌놈인 네가 사람들 앞에서 10배의 위약금을 배상해 주겠다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송 대표가 이 꼴이 됐겠어?”
김수호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걸어와서 우쭐한 표정으로 송아영을 바라보았다.
“송씨 가문이 아무리 박박 끌어모아도 10배의 위약금을 배상해 줄 수는 없어. 송씨 가문을 구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나랑 결혼해.”
송아영은 김수호의 행위에 치가 떨렸다. 김수호는 그녀를 몇 년 동안 짝사랑했고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었다.
송아영은 김수호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송아영은 이미 막다른 골목길로 몰린 상태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수호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면 한스 그룹을, 송씨 가문을 지킬 수 있었다.
송아영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설마 운명인 걸까?’
이때 누군가 갑자기 외쳤다.
“손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윤기태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예상대로 사부님이었다.
“김수호 도련님, 사부님께서 직접 계약식에 참석했다는 건 김씨 가문을 그만큼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김씨 가문은 앞으로 승승장구할 겁니다! 우리 얼른 사부님을 맞이하러 갑시다.”
윤기태는 김수호를 데리고 달려 나가더니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사부님, 이쪽은 김씨 일가의 도련님, YS그룹의 사장님 김수호 씨입니다.”
“손 회장님, 안녕하세요!”
김수호는 흥분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는 손호윤과의 악수를 기대했고, 앞으로 손씨 일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손호윤은 그를 무시하고는 곧장 어린아이처럼 하강우에게로 달려갔다.
흥분으로 떨리던 김수호의 손은 머쓱하게 허공에 멈추었다.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