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미진 아주머니가 속으로 흠칫했다. ‘설마 김은주의 연기에 넘어간 건 아니지? 그렇다면 도련님이 멍청…….’ 심경준은 벌써 검은 우산을 들고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도련님!” 미진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불렀다.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남자를 보자, 아주머니는 화가 나서 땅을 몇 번 짓밟았다. 김은주는 힘없이 빗속에 앉아있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슬슬 포기할 생각이 들었는데, 마치 고귀한 신처럼 자기 앞으로 걸어온 사람을 보고, 그녀는 또다시 흥분하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불쌍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심경준은 눈썹을 찌푸리고 빠른 걸음으로 김은주 앞에 걸어갔다. 그리고 우산을 내밀고 비를 막아주며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일으켰다. 그의 힘이 너무 세서 김은주에게 전혀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경준 오빠…….” 김은주는 아주 자연스럽게 심경준 품에 안기며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심경준을 보자마자 다 나은 것처럼 양팔로 그의 튼튼한 허리를 꽉 안았다. 그리고 젖은 얼굴로 그의 가슴을 비볐다. 심경준은 순간 짜증이 났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김은주에게 물었다. “너 원래 몸 안 좋잖아. 이렇게 비 맞으면 감기 걸려.” 김은주는 창백한 얼굴을 들어 올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했다. “경준 오빠, 혹시 내가 싫어진 거야? 요즘 나한테 너무 차가운 거 같아. 그 슈트 때문에 그래? 내가 잘못했어. 백아연한테 사과하러 갈게. 용서해 달라고 빌게, 응?” “됐어. 그 일은 이미 지나갔어.” 심경준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내 얼굴도 봤으니까, 이제 안심됐지? 은주야, 일단 집에 가서 네 가족이나 챙겨. 며칠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찾으러 갈게.” 심경준이 자기를 내쫓자, 김은주는 아가씨의 품위도 신경 쓸 겨를 없이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오빠, 곧 감옥 가! 유씨 가문이 무서워서, 서울에 우리 오빠를 도와줄 변호사가 하나도 없단 말이야! 유씨 가문도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가족을 죽이려고 작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