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난 성 씨이고, 넌 강 씨야
강찬우가 밤새 귀가하지 않았지만 성시연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고 또한 그가 어디 갔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제 그만 강찬우에게 신경을 꺼야 아니까.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성시연은 느긋하게 아침을 차리고 간만에 홀가분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피아노 레슨하러 진현수의 집에 갈 테니 오전은 여유가 생겨 집 청소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3년 동안 단 하루를 온전하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청소를 시작했는데 이 큰 별장을 혼자 청소하는 건 그야말로 무리수였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화장실 청소를 겨우 마치고 잠시 쉬어갔다. 곧이어 그녀는 강찬우의 서재로 들어가 청소를 이어갔다.
3년 전에 강찬우는 이 집을 떠나면서 서재 문을 잠갔고 그 바람에 그녀도 줄곧 방 정리를 못 했는데 오늘은 문이 열려있어 드디어 청소하러 들어왔다.
안에 들어서자 짙은 먼지 냄새가 코를 찔러 기침이 저절로 났다. 그녀는 마지못해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다행히 창문이 굳게 닫혀있어 바닥의 먼지가 너무 두껍게 쌓이진 않았다.
통유리창 앞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자 쏟아지는 햇살이 방안에 드리워지면서 침울했던 방안을 환기시켜 주었고 아까보다는 활기찬 분위기로 거듭났다.
서재 청소까지 마치자 어느덧 오후 한 시가 다 돼갔다. 녹초가 된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아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이때 문득 손에 잡히는 대로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가져와 펼쳐보았는데 낡은 종잇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곳은 강찬우의 서재이기에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물건이다. 성시연은 어느 하나 망가뜨릴 수 없어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종잇장을 주웠다. 그 위에 적힌 글을 똑똑히 들여다본 후 그녀는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 종잇장은 바로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한 편의 작문이었고 제목은 바로 [나의 오빠]였다.
‘이게 언제 내 책에서 찢겨 나간 거지? 여태껏 찬우 씨한테 있었던 거야?’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가 살짝 노랗게 변했고 위에 적힌 글씨체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읽히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글씨체가 예쁘고 정갈했다. 다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빠’라는 호칭마다 감쪽같이 지워진 상태였다. 강찬우는 그녀가 이토록 싫었던 걸까? 작문에서까지 오빠라는 호칭이 꺼렸던 걸까?
문득 아래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성시연은 재빨리 종잇장을 잘 접어서 옷 주머니에 넣어두고 그 책은 다시 원위치에 꽂았다. 이제 막 서재에서 나올 때 강찬우와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그녀는 바짝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저기 그게...”
강찬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누가 들어가라고 했어?!”
성시연은 초조한 듯 옷깃을 꼭 잡았다.
“저는 그냥... 서재가 너무 지저분하길래 청소 좀 해주고 싶었어요. 찬우 씨도 서재를 쓸 거 아니에요? 청소는 다 마쳤어요. 내가 찬우 씨 물건 만지는 게 싫으면 앞으론 청소 아줌마를 따로 부를게요.”
그는 매정하게 성시연을 밀치고 서재에 들어가 쭉 훑어본 후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내가 알아서 해. 넌 이런 일 신경 꺼. 여기 산다고 네가 안방마님인 건 아니야. 뭔 말인지 알겠어?”
성시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알아요. 저는 그럼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이제 막 몇 걸음 나섰는데 뒤에서 대뜸 강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돈이 그렇게 부족한 거야? 이 몇 년 동안 섭섭지 않게 준 거로 아는데? 제발 나가서 내 체면이나 깎지 마!”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안 돌린 채 그대로 말했다.
“그동안 챙겨줘서 고마워요. 저는 이젠 성인이 됐으니 나가서 일할 수 있어요. 더는 찬우 씨 도움이 필요 없다고요.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았고 벌어들인 돈도 다 깨끗한 돈이에요. 찬우 씨 체면을 깎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난 성 씨이고 찬우 씨는 강 씨에요. 아무도 우리 관계를 모르니까 찬우 씨 체면 깎을 일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