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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병적인 사랑

성시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한없이 차가운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안 설렐 수가 없었다... “저기...” 그녀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강찬우가 또다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분수나 잘 지켜. 넌 내게 업소 아가씨랑 다를 바 없어. 유일하게 다른 점은 널 내 집에서 지내게 한다는 거야.”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시연은 사색이 된 채 찢어질 듯한 마음을 꾹 짓눌렀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뭐가 그리 속상하다고...’ 그녀가 아침상을 차려주는 건 강찬우에게 무의미한 노릇이었다. ... 성시연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병원에 도착해 익숙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신경외과로 향했다. 검사실 구역을 지나갈 때 문득 청량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진단서 언제 나와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인데... 아 참, 어젯밤에 울면서 강찬우에게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다던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성시연은 이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한 여자가 검은색의 타이트한 슬릿 서스펜더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날씬한 다리를 훤히 드러냈다. 쭉쭉 뻗은 몸매와 예쁘장한 얼굴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다만 화장이 너무 진해서 살짝 촌스러워 보였다. ‘찬우 씨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성시연은 별안간 침대에서 껴안고 있는 강찬우와 그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더니 강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곧장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병원 검사실은 대부분 3층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저 여자는 어제 낙태 수술로 후속 검사를 받으러 온 모양이다. 성시연은 더 머물지 않고 사무실에 돌아가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었지만 머릿속엔 자꾸만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산부인과로 향했다. “이 선생님, 방금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 입고 온 분 어제 낙태 수술한 환자 맞죠? 수술은 잘 됐나요?” 이 닥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답했다. “아, 그 환자분... 이하윤이라고 했나? 맞아요. 어제 금방 낙태 수술해놓고 오늘 저 옷차림으로 왔네요. 이제 막 봄이 시작됐는데 병날까 두렵지도 않은가 봐요. 젊은이들은 역시 튼튼하다니까요. 수술은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됐어요. 혹시 성 선생님 아는 분이세요?” 성시연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냥... 제 친구 여자친구라서요. 아직 서로 인사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녀는 강찬우와 수년간 알고 지내면서 아직도 둘 사이의 관계를 확정 짓지 못했으니 좀 우습고 황당할 따름이었다. 친구 사이라고 소개하는 것조차 너무 어색했다. 이때 이하윤이 불쑥 진단서를 들고 기세등등하게 사무실에 찾아왔다. “선생님, 진단서 나왔어요. 얼른 한번 봐주세요.” 이로써 좀전의 화젯거리는 그대로 종료됐다. 성시연은 어색하게 두 손을 가운 옷 주머니에 넣고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뒤에서 몰래 남의 일을 캐는 게 적응이 안 됐던지라 이하윤을 보니 가슴이 찔렸다. 가끔은 심지어 강찬우를 향한 이 마음이 병적인 사랑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의심할 때가 있다. 대체 왜 이하윤의 상황을 알고 싶은 걸까? 아이를 확실히 지웠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만약 안 지웠다면 강찬우는 그 여자와 결혼하게 될까? 성시연은 본인조차 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또 감히 깊이 들여다볼 엄두도 안 났다. 이때 옆에 있던 이하윤이 그녀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 성시연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단언컨대 예전에 이하윤을 본 적이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의사와 환자의 신분으로 마주쳤을 뿐이다. 잠시 후 이하윤이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 맞다, 강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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