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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서윤아는 떨떠름했다. 설마 박시훈과 헤어진 당일, 고수혁의 집에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깊게 생각하기엔 너무 지친 상태였다. 고수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서윤아의 얼굴을 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너 열 나?” 고수혁이 굳은 얼굴로 서윤아를 바라봤다. 아픈 건 그녀인데 기분이 안 좋은 건 그 같았다. 서윤아는 담담하게 고수혁을 쳐다보다 엉뚱한 말을 꺼냈다. “수혁 선배, 저 챙겨줄 필요 없어요. 저랑 시훈 오빠, 헤어졌어요.” 고수혁이 멈칫했다. 그가 입술을 달싹였지만,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서윤아가 혼절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고수혁은 그대로 서윤아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꼭 안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정적 속에서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비를 두 차례나 맞은 서윤아는 진작 열에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반쯤 잠든 상태에서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희미한 감각이 들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수건으로 조심스레 땀을 닦아주고, 또 줄곧 따뜻한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열이 어느 정도 내리고 흐릿하던 의식이 돌아올 즈음, 서윤아는 무언가에 눌리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천천히 눈을 뜬 그녀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코끝을 간지럽히는 좋은 향기였다. 그리고 곧 입술에 무언가 살포시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확 깼다. 고수혁이…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 순간 고수혁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놀라서 커진 서윤아의 눈과 마주쳤다. 하지만 역시 언제나 고고한 고수혁답게 자는 사람에게 몰래 키스한 걸 들키고도 그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잡고 있던 서윤아의 손도 놓지 않았다. 막 열이 내린 서윤아의 멍한 머리는 방금 일어난 일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왜 나한테 키스를 해요?” 고수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널 좋아하니까.” 그 말에 서윤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 그래도 멍한 머리가 완전히 제 기능을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고수혁의 고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서윤아, 8년 전부터 널 좋아했어. 박시훈보다도 먼저. 내가 뭘 할 겨를도 없이 박시훈이랑 얽혀버렸지만, 이제 너희 헤어졌다며. 그럼 나도 더 이상 포기할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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