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나는 주한준이 이 늦은 밤에 내게 약을 가져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한순간 어리둥절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켕겼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주한준이 우리 사이의 그 보잘것없는 친분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마도 커플 공간 프로그램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하던 코딩 작업 페이지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일부러 이 일을 그냥 넘기며 말했다.
"나는 아직 코딩 작업이 남아서 배웅해 주지 못할 것 같아.”
아예 대놓고 축객령을 내렸다.
주한준은 멈칫하더니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내 손에 들려있는 핫팩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난방을 틀지 않았어?"
난방? 주한준은 우리 회사가 영한 그룹이랑 같은 줄 아나 보다.
우리 회사 같은 오래된 사무실은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인데, 별도의 난방시설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안 추워."
주한준은 그 말에 아무 대답 없이 옆에 있던 사무용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나는 오늘 밤 결과를 제출하지 않으면 주한준이 돌아가지 않으리라 여겨 커플 공간 페이지로 전환한 뒤 물었다.
"어디를 더 수정해야 할지 한 번 확인해 봐.”
주한준은 사무용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다가와 몇 번 훑어본 뒤 말했다.
"포화도가 부족해."
귀에 익은 대사였다.
나는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십 분만 더 기다려.”
주한준이 “응”하고 대답한 뒤, 한쪽에 있는 작은 책꽂이에 시선을 옮겼다. 다음 순간, 남자의 길고도 균형 잡힌 손가락이 그중의 책 한 권 위에 올려졌다.
주한준이 내게 물었다.
"언제 추리 소설에 빠졌어?"
그쪽을 힐끗 쳐다본 나는 주한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바로 엄겨울이 내게 선물해 준 그 추리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가끔 뒤져봤으나, 주한준이 왜 내가 추리 소설에 빠졌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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