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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장

주한준은 할머니를 뵌 적이 있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 시골에 계셨던 할머니가 갓 뜯은 호두를 가지고 경안시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차비를 아끼려고 하였기에 할머니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랑 주한준이 도서관에서 나왔을 때 나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결국 주한준이 나랑 같이 기차역에 가주었다. 그날 주한준은 식사며 숙박이며 모두 잘 챙겨주었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모두 변했고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할머니 몸이 편찮으셔." 나는 마치 모르는 사람 일을 말하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한준은 내 팔을 쥔 손에 힘을 조금 풀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그날, 네가 말하지 않았잖아." 그날? 아마 내가 영한 그룹 대표실에 간 날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인지 주한준의 말투에는 자책이 담긴 듯했다. '심장이 돌덩이처럼 딱딱한 주한준이 자책을 해?' 주한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기회를 느낀 것 같아 나는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병 치료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프로젝트 추진하려고 그런 거야."' 주한준은 검은 눈동자에 의심을 품고 물었다. "할머니 때문이야?" 눈이 마주쳤는데 주한준의 눈에서 나는 다정함을 읽었다. 이렇게 다정한 눈빛을 본 지가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침을 삼키고는 뭔가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그날 대표님이 저한테 설명할 기회 주지 않았잖아요." 말을 마치고 나는 머리를 숙이고 주한준을 더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주한준은 내가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한준이 양심의 가책을 얼마나 느낄지,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 나는 속으로 내기하고 있었다. 1초, 2초, 3초. 시간이 흘러갈수록 숨이 점점 막혀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주한준은 말을 이어갔다. "남 팀장 연기가 나날이 발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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