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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김인영은 차디찬 반응에 자존심이 상했다. “명수 씨, 여긴 당신한테 맡길게!” 뒤에서 장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인영아, 화 풀어. 저런 인간이랑은 화낼 가치도 없어. 몸만 상해. 일단 올라가 있어. 이쪽은 내가 맡을게.” 김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장명수는 시계를 풀어 김인영에게 건네고는 느긋하게 소매를 걷었다. “이장훈, 무능한 인간들이 종종 여자한테 무시당하고 죄 없는 처남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당장 인영이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지옥이 뭔지 알게 해줄 거니까!” 이장훈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두 사람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네가?” 장명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억울해? 무능한 것들은 분수도 몰라.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 내 주먹이 얼마나 매운지 곧 알게 될 거니까. 나중에 살려달라고 빌지나 말고.” 말을 마친 장명수는 격투기 동작을 선보였다. 물론 이장훈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장명수는 이장훈이 꼼짝도 않고 있자 하찮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왜? 겁나? 늦었어! 그러게 누가 인영이를 건드리래?”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다리를 쭉 뻗어 이장훈의 뺨을 노렸다. 묵직한 힘이 실린 한방이었다. 발끝이 이장훈의 얼굴에 닿으려던 순간, 이장훈은 번개처럼 고개를 젖히고 다리를 쭉 뻗어 장명수의 배를 걷어찼다. 장명수는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그대로 날아 바닥으로 추락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비겁하게 기습을 해? 정말 생긴 것처럼 야비하네! 내가 오늘 너 쓰러뜨리지 못하면 성을 간다!” 이번에 그는 조심성 있게 접근했다. 그는 이장훈이 방심한 틈을 타서 팔꿈치로 이장훈의 명치를 노렸다. 이번에 장명수의 행동은 무척이나 빨랐다. 하지만 이장훈은 다시 다리를 뻗어 장명수의 복부를 걷어찼다. 건장한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버렸다. 장명수는 배를 붙잡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경악한 표정으로 이장훈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이 어떻게… 난 전문가에게서 격투기를 배운 사람이라고!” 이장훈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장명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에 너보다 강한 사람은 많아. 두 번이나 내 공격을 피하지 못한 주제에 허세는!” 장명수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독기로 가득한 이장훈의 눈빛을 보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인영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장명수는 어릴 때부터 격투기를 배우고 대회에서 상도 받은 적 있는 사람이었다. 이장훈은 한 번도 그녀의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내가 아는 이장훈 맞아?’ 이장훈은 장명수에게로 다가가 발로 그의 가슴팍을 짓밟으며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내가 살려달라고 빌 거라고 했었나?” 장명수는 호흡이 가빠지며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명안그룹 사람이야…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옆에 있던 김인영도 거들었다. “이장훈, 왜 이러는 거야? 이러다 사람 죽어! 그 결과를 책임질 수는 있어?” 탁! 이장훈은 그대로 장명수의 머리를 걷어찼고 장명수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 그는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는 김인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 건드린 대가도 가볍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이장훈의 눈빛은 고요하고 싸늘했다. 그에게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매서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김인영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착하기만 하고 약해 빠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예전에는 그녀가 눈물 한방울 흘리면 당황하며 달래주던 사람이고 그녀를 대신해 감옥까지 갔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던 사람인데 지금 그를 보고 있으면 두려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멀리서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이장훈을 불렀다. “이장훈 씨?” 그들 사이에는 자동차가 막고 있었기에 그는 이장훈이 사람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제가 이장훈입니다. 누구시죠?” 사내는 이장훈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지원팀 팀장 유지환입니다. 오늘 운전기사로 들어오신 분이죠? 이쪽으로 오셔서 서류 작성해 주세요. 증명사진이랑 신분증 복사본도 제출해 주시고 저랑 같이 입사 수속하러 갑시다.” 이장훈은 이미 기절한 장명수에게서 시선을 떼고 싸늘한 눈빛으로 김인영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앞으로 나 건드리지 마!” 김인영은 놀라서 뒤로 뒷걸음질쳤다. 이장훈은 곧장 유지환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증명사진은 안 가져왔는데요.” 유지환은 위층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위층 올라가면 복사기 있어요. 사진에 원본 사진만 있으면 출력도 가능해요.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내 책상에 올려두세요.” 이장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김인영은 그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운전기사?’ 뭐 대단한 취업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고작 운전기사였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전과자 신분이니 그를 받아줄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스펙 요구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운전기사로 취직했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운전기사 주제에 명수 씨를 저렇게 만든 거야? 대체 뭘 믿고?’ 이때 장명수가 기침을 하며 가슴을 붙잡고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김인영에게 물었다. “그 자식은? 나 못 참겠어. 애들 부를 거야! 이대로는 못 넘어가!” 김인영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여기 태진그룹 본사야. 소란이 커져서 괜히 안 좋은 인상만 남기는 게 아닐까?” 태진그룹과 협력계약을 체결하는 건 장영 물산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였다. 장명수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럼 나더러 참으라고?”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해서 이혼한 무능한 남자에게 맞은 걸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김인영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명수 씨 당하는 걸 지켜만 보겠어? 정보 하나 줄게. 그 인간 태진 그룹 운전기사로 취직한 것 같아. 오늘 입사한 것 같은데 명수 씨 이 회사에 지인이 있다며? 전과자 한 명 퇴사시키는 건 일도 아니지 않아?” 장명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녀석이 여기서 운전기사로 일한다고? 마침 내 지인이 지원팀 유지환이야. 내 전화 한통이면 바로 놈을 퇴사시킬 수 있어.” 한편, 이장훈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출력하고 신분증을 복사한 뒤에 유지환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마저 김인영, 장명수 커플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장명수는 싸늘한 목소리로 이장훈에게 말했다. “이장훈, 넌 해고야.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 나한테 주먹을 휘두른 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이장훈이 뭐라고 하려는데 유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장훈 씨, 들어와봐! 물어볼 게 있어!” 이장훈은 멀어지는 김인영, 장명수를 힐끗 보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팀장님, 사진이랑 신분증 복사 끝났어요. 서류 작성은 어디서 하면 될까요?” 유지환은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장훈 씨가 전과자라는 제보가 있었어. 자네 아주 담대하네. 어찌 전과자 주제에 태진그룹에 입사할 생각을 다했지? 태진이 우스워? 입사 절차는 됐고 당장 짐 싸서 여기서 나가! 당신 같은 인간은 여기서 일할 자격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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