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자격이 없단 말에 이장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곳에 온 이유는 조수연과 좀 더 알아가기 위해서이고 조태풍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개 지원팀 팀장에게 자격이 없다는 소리나 듣다니!
“팀장님께서 상황을 잘 모르시나 본데….”
유지환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알고 싶지도 않고 해명할 필요도 없어. 난 팀장이고 지원팀 인사에 관여할 자격이 있어. 나도 바쁜 사람이라고. 일개 운전기사 따위와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어딨어. 당장 꺼지라니까!”
이장훈은 겨우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
“말 가려서 하시죠? 저도 여기서 소란을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유지환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팀장은 나야. 당신 말고도 운전기사만 열 명이 넘는다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해고라면 꺼지면 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우린 전과자 안 쓰니까 해고라고! 못 알아들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장훈은 손을 뻗어 유지환의 귀뺨을 갈겼다.
“말 가려서 하라고 했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유지환은 벙찐 표정으로 이장훈을 바라보았다. 주먹으로 되돌려주고 싶지만 이장훈의 건장한 근육을 보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금 날 쳤어? 이 자식 미친놈 아니야, 이거! 당장 경비 부를 거니까 딱 기다려!”
말을 마친 그는 바로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
“너 오늘 딱 걸렸어. 기다려!”
이장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네. 사실 운전기사는 이름만 올린 거고 그쪽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난 여기 조 대표랑 교제하는 사이예요.”
유지환은 이장훈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미친 사람을 보는 눈으로 이장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조 대표님 남자친구라는 거야? 우리 대표님 따라다니는 남자들 줄 섰어. 잘나가는 엘리트들도 줄줄이 거절을 당했는데 네가 대표님 남자친구라고? 야, 꿈 깨!”
이장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내가 한 말 전부 사실이고, 믿지 못하겠으면 대표님한테 직접 물어봐요.”
유지환은 차게 코웃음쳤다.
“굳이 그걸 확인까지 해야 해? 이장훈, 넌 네 과거를 아무도 모를 것 같지? 아니, 난 네 녀석의 과거에 대해 아주 잘 알아. 출소하자마자 아내한테 버림받고 어린 딸까지 있잖아. 너 같은 조건에 대표님이 눈이 먼 게 아닌 이상 어떻게 너랑 교제하겠어?”
이장훈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쪽이 확인을 안 하겠으면 내가 직접 확인시켜 드리죠!”
말을 마친 그는 바로 조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예요?”
사무실에서 한창 열일하고 있던 조수연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이죠. 무슨 일로 연락했죠?”
이장훈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그대로 그녀에게 얘기하고는 말했다.
“지원팀 팀장 사무실인데 유지환 팀장이 날 해고한다네요.”
조수연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사 첫날에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해고를 당한단 말인가!
‘설마 여직원들한테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야?’
조수연이 이장훈을 이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하는 데는 첫인상이 가장 큰 작용을 했다.
첫만남에 가슴을 만지고 단추를 풀어버린 남자라 정이 갈 수가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을 했길래 해고를 당한다는 거죠?”
이장훈이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날 보자마자 해고한다네요.”
그녀가 못 미더운 말투로 말했다.
“유지환 팀장 바꿔줘요. 내가 얘기할게요.”
그녀는 유지환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만약 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을 벌였다면 당연히 쫓아낼 생각이었다.
이장훈은 핸드폰을 유지환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표님 전화니까 받아봐요.”
유지환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연극도 정도껏 해야지. 일개 운전기사에게 대표님 연락처가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나조차도 없는데.”
이장훈은 무기력감을 느끼며 조수연에게 말했다.
“안 받는데요. 나한테 조수연 씨 연락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아요. 직접 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조수연은 책상 위에 높게 쌓인 서류를 보고 인상을 썼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로 외출해야 한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았어요. 일단 끊어요. 지금 갈게요.”
전화를 끊은 이장훈은 유지환에게 말했다.
“곧 온다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그리고 이때, 멀리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세 명의 경비실 직원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유지환은 그들을 보자 바로 이장훈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에요. 당장 끌어내요!”
경비 팀장은 손에 야구방망이를 든 채로 유지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귀뺨을 맞은 유지환은 그저 이장훈을 혼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늘 우리 지원팀에 입사한 녀석인데 큰 잘못을 저질러서 해고한다니까 버티고 있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무슨 대표님 남자친구라고 했어요. 미친놈 같으니까 당장 끌어내요!”
경비팀장도 적잖이 당황했다. 태진그룹 대표의 남자친구를 사칭하는 사람이 다 있다니! 이 일이 만약 알려지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분명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부하직원에게 손짓했다.
“저 사람 끌어내!”
경비실 직원 두 명이 이장훈에게 접근했다.
이장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소란 피우고 싶지 않아요. 조 대표님 곧 오신다니까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어요.”
경비 팀장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그냥 처맞기 싫은 거겠지! 당장 안 끌어내고 뭐 해?”
지령을 받은 경비 팀원들이 이장훈에게 달려들었다.
경비팀장도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유지환도 혼란을 틈타 귀뺨을 돌려줄 태세로 의기양양하게 뒤에서 다가갔다.
퍽!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경비실 직원 두 명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경비팀장도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장훈은 그대로 다리를 쭉 뻗어 경비팀장의 복부를 걷어찼다.
경비팀장은 그대로 허공에 몸이 붕 뜨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유지환은 쓰러진 경비실 직원들을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너….”
이때,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이장훈의 시야에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조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오셨네요. 내가 수연 씨랑 교제 중이라니까 다들 안 믿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