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이장훈은 조수연을 힐끗 보고는 김인영에게 물었다.
“조수연 씨 여기 왔어. 할 말 있으면 해.”
김인영은 이장훈의 당당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이장훈이 조수연과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기분이 나빴지만 눈앞에 마주하고 있으니 더 기분이 나빴다.
그녀가 아는 이장훈은 전과자에 직장도 없고 능력도 없는 루저였다.
그런 사람이 조수연 같은 미녀 재벌을 만난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이장훈은 김인영이 말이 없자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조수석에 올랐다.
조수연은 김인영과 이장훈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을 읽고 그에게 물었다.
“두 사람 무슨 사이예요?”
이장훈은 솔직히 답했다.
“전처요.”
짧고 굵직한 답이었다.
김인영은 넋을 놓고 있다가 오늘 조수연을 찾아온 목적을 떠올리고 다가가서 차창을 두드렸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대표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조수연은 망설이다가 차창을 내렸다.
“무슨 일이시죠?”
김인영은 손가락으로 이장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님, 저 인간에게 속고 계시는 거예요.”
조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허술한 인간으로 보이나요?”
그 말을 들은 김인영의 얼굴이 당황함으로 물들었다. 이장훈의 본모습을 폭로하고 조수연과의 유대를 쌓으려는 시도였는데 원하던 방향과 너무 달랐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장훈이 대표님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저와 이장훈이 무슨 관계인지 아시나요?”
조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이장훈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수연이 대놓고 옹호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김인영은 다시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는 이장훈 씨의 전처예요. 제가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저 사람이 무능하고 게다가 전….”
조수연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을 끊었다.
“그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네요. 무능한 사람이라서 남편을 버렸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군요. 맞나요?”
김인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수연이 이렇게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을 줄이야!
“네, 맞아요.”
조수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얘기는 들어봤어요? 당신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내 눈에는 아주 소중한 보석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할아버지를 살려줄 사람이고 좋든 싫든 뛰어난 의사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그가 뛰어난 인재라고 했으니 그녀는 할아버지의 안목을 믿었다.
김인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표님은 좋은 가정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라서 모르는 게 있어요. 저는 대표님보다 나이도 많고 겪어본 것도 많죠. 정말 보석이었다면 제가 몰랐을까요?”
조수연은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지 아나요? 그런 사람을 알아보려면 내면을 보는 눈이 중요하죠. 당신은 우매하고 식견이 짧아서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해요. 난 이장훈 씨가 나중에 찬란하게 빛날 보석이라고 생각해요.”
김인영은 이장훈을 대놓고 치켜세우는 조수연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더욱 화가 나는 건 그 대단한 조수연 대표가 자신을 우매하고 식견이 짧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는 사실이었다.
화를 내고 싶지만 상대가 조수연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조수연은 계속해서 말했다.
“눈이 먼 사람은 보석을 못 알아보고 정 없는 사람은 대성할 수 없어요. 당신은 정도 없고 우매한 사람인 것 같군요. 어쨌든 난 당신이 자리를 내어준데 대해 고마워해야겠군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시동을 걸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김인영은 멀어지는 차량을 바라보며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외모로 따지나 신분으로 따지나 김인영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만 원하면 못 만날 남자가 없을 텐데 왜 자신이 버린 남자를 주워다가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장훈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란 말인가?
장명수가 다가와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김인영은 당황한 얼굴로 먼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장훈을 폭로했는데 조 대표는 전혀 안 믿는 것 같아.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장명수가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영이 넌 저 자식과는 원수보다 못한 사이고 만약 저 자식이 조수연의 남자가 된다면 넌 태진그룹과의 계약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벽에 부딪히게 될 거야. 회사는 망했다고 보면 돼.”
김인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조 대표가 이장훈을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데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
장명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직 완전히 까발린 건 아니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낼 게 아니라 전과자 신분부터 까발려야 했어. 사람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전과자 신분이거든.”
김인영은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그러네! 아까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말을 못했었네. 만약 전과자 신분을 먼저 폭로했더라면 조 대표도 무서워서 도망갔을 거야. 하지만 이제는 어떡하지?”
장명수가 옆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쫓아가야지. 이장훈이 전과자라는 것을 조수연에게 알려야 해. 그 얘기만 들으면 조수연 대표도 우리한테 고마워할 거야.”
두 사람은 그 즉시 차에 올라 조수연을 쫓아갔다.
이장훈은 가는내내 조수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겉보기에 무척 차가워 보이는 여자가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솔직히 탐욕을 부르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도 끌렸다.
조수연은 그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 얼굴이 화끈거려서 새침하게 물었다.
“뭘 그렇게 봐요?”
이장훈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날 변태라고 욕부터 박던 사람이 내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거든요.”
조수연은 담담히 답했다.
“편을 든 게 아니라 팩트를 말한 거죠. 난 이장훈 씨에 관해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장훈 씨의 능력을 높게 샀죠. 할아버지는 평생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할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분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엘리트가 되었죠.”
이장훈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솔직히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할게요. 조 회장님이 날 만나러 온 날이 사실은 내 출소일이었어요.”
출소라는 얘기에 핸들을 잡고 있던 조수연의 손이 멈칫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사정으로 수감생활까지 하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이장훈이 말했다.
“실례라고 할 것도 없어요. 처음부터 얘기할 생각이었으니까. 난 전처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어요. 전처가 회사 장부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거든요. 그 여자는 나한테 대신 감옥에 가달라고 부탁했고 난 남자로써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감옥에 간 거예요. 그런데 출소하고 나오자마자 그 여자가 이혼서류를 들이밀 줄은 몰랐죠.”
조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역시 그 전처라는 여자는 식견이 짧은 사람이었네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새 별장 앞에 도착했다.
미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태풍은 손녀를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넌 왜 왔어?”
조수연은 대답 대신 그에게 물었다.
“인삼은 받았어요?”
조태풍은 정교한 상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전에 받았는데 나도 아직 안 열어봤어.”
이장훈은 박스를 열어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인삼도 도착했으니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겠네요. 진료 시간에는 절대 안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조용한 방으로 가시죠.”
조태풍은 이장훈을 2층으로 안내했다.
조수연은 거실에서 기다리다가 경호원을 불러서 말했다.
“입구에서 지키고 있다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으면 전부 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