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김인영은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대단해. 20분만에 해결하다니.”
장명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사소한 일이야.”
사실 유지환은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사이였다.
하지만 장명수에게는 넘쳐나는 돈이 있었고, 명품 라이터 하나 선물로 보내자 유지환이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거였다.
“잠깐 조용히 해봐. 지환이랑 얘기 좀 할게.”
김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장명수는 김인영에게 들려주기 위해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환아, 난데. 약속 시간은 언제로 잡았어?”
장명수의 목소리를 듣자 유지환은 부아가 치밀었다.
“나 해고 당했어. 부탁은 무슨! 장명수,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장명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나랑 헤어질 때까지 아무일 없었잖아?”
그러자 유지환의 분노한 포효가 들려왔다.
“네가 괜히 이장훈 그 사람 건드려서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너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장명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혼남에 애까지 딸린 전과자잖아? 뭐 더 있어?”
유지환은 그 말을 듣자 더 화가 치밀었다.
“아직도 거짓말이네. 널 믿은 내가 바보지. 내 직장 어떡할 거야! 이장훈 그 사람 조수연 대표의 남자친구였다고! 괜히 네 말 믿고 그 사람 건드렸다가 해고까지 당했어! 이제 어떡할 거야!”
뭐라고?
장명수와 김인영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이장훈이 조수연 대표와 교제 중이라니!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라서 믿기지 않았다.
장명수는 당황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지환아, 장난이지? 이장훈 걔 출소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어. 일반인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힘든 조건인데 태진그룹 대표랑 만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옆에 있던 김인영도 말했다.
“맞아요. 전과자에 능력도 없어서 제가 이혼한 거거든요. 조 대표님 같은 우월한 조건을 가진 여자가 그런 인간을 마음에 들어할 리 없어요!”
그녀는 차라리 해가 서쪽에 뜬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신분 격차가 심하다는 얘기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국내 랭킹에 들어가는 대기업 대표가 뭐하러 전과자를 만난단 말인가!
유지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내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뭘. 이런 거로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겠어? 그러니까 왜 조용히 사는 사람 부추겨서 직장을 잃게 만드냐고? 이제 난 어떡해?”
김인영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말 전부 사실인가요? 정말 직접 봤어요? 잘못 들은 게 아니고요?”
유지환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만 잘린 게 아니야. 같이 있던 경비팀장이랑 직원도 잘렸어. 내가 왜 이런 거로 거짓말하겠어?”
김인영과 장명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지환은 그들이 답이 없자 더 화가 치밀어 배상하라고 난리를 치다가 홧김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인영은 사색이 돼서 말했다.
“망했다. 이장훈이 조 대표와 교제 중이라면 우리 거래는 완전히 물 건너간 거잖아. 앞으로 장영 물산은 송강시에서 더 이상 발 디딜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왜 이렇게 된 거지? 그 인간은 어쩌다가 조 대표를 만난 걸까?”
장명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만약 이장훈이 진짜로 조수연과 교제 중이라면 김인영과의 관계를 빨리 정리하는 게 맞았다.
어정쩡하게 있다가 이장훈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김인영은 뭔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이장훈이 조 대표한테 거짓말을 하고 접근한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안 되잖아?”
장명수도 그 말에 동의하며 테이블을 탕탕 쳤다.
“그래. 분명 그랬을 거야. 이혼남에 애까지 딸린 전과자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조 대표한테 접근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 대표가 그 인간에게 마음을 준 건 좀 이상한데? 어쩌면 자기가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고 포장했을지도 몰라. 재벌가 2세라거나 하면서 말이야.”
김인영도 그 말에 찬성했다.
“맞아. 분명 그랬을 거야. 가자. 조 대표 찾아가서 이장훈의 본모습을 까발리자. 그럼 조 대표도 우리가 고마워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줄지도 모르잖아.”
장명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당장 가자. 그 멍청이가 멀쩡한 처자를 속이는 건 두고볼 수 없어.”
점심.
이장훈은 시내의 김밥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조수연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예요?”
조수연이 물었다.
이장훈은 먹던 밥을 삼키며 답했다.
“차 필요해요?”
그는 운전기사로써의 자신의 직책을 잊지 않았다.
조수연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에게 말했다.
“밥 한끼 사드리고 싶어서요. 첫만남에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의미로요.”
그녀는 이장훈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좀 더 알아가고 싶었다.
이장훈은 어이없다는 듯이 단칼에 잘랐다.
“죄송한데요, 밥은 이미 먹고 있어서요.”
조수연은 자기가 거절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 인간은 눈치가 이렇게 없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럼 밥 먹고 커피는 어때요? 물론 커피 싫으면 차로 대신해도 괜찮고요.”
그녀는 거절당할까 봐 친절하게 다른 선택지도 제공했다.
이장훈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쉬운 얼굴로 답했다.
“차 마실 시간은 없을 것 같네요. 다음에 마셔요.”
처음으로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조수연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유라도 말해줄 수 있나요?”
그녀는 이 남자가 왜 이렇게 비싸게 구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이장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이따가 한 시간 뒤에 주문한 인삼이 도착한다네요. 조 회장님 진료해 드리러 가야 해요. 회장님은 수연 씨한테 알리지 말라고 해서 말을 안 한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조수연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지금 어디예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이장훈은 한조각 남은 김밥을 입안에 욱여넣고는 말했다.
“내가 회사로 갈게요. 회사 앞에서 봐요.”
전화를 끊은 조수연은 곧장 핸드백을 챙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이장훈도 곧장 맞은편에 있는 회사 건물로 향했다.
대문 앞에 금방 도착했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또 보였다.
김인영과 장명수였다.
둘은 경비실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조수연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것 같았다.
김인영은 이장훈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이장훈, 드디어 잡았다! 너 이제 끝장이야. 나 조 대표 앞에서 네 본모습을 까발릴 거야. 어디 전과자 주제에 태진그룹을 넘봐?”
이장훈은 내려갔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 이혼하고 각자 갈 길을 가면 되는데 왜 이 여자는 이리도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걸까?
“김인영, 나 너랑 얘기할 시간 없어. 경고하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마!”
김인영은 이장훈이 당황한 줄 알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섰다.
“이상한 짓 한 사람은 너지. 딱 기다려. 조 대표 만나서 모든 걸 말할 거야.”
이때, 이장훈의 옆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다.
조수연은 차창을 내리고 이장훈을 향해 소리쳤다.
“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