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장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반박하지 않았다.
아까는 하지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해서 고준성을 이용해 자극하려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생각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다른 남자를 이용해서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자극하려 했으니 말이다.
고준성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요, 데려다줄게요.”
“정말 괜찮아요.”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차피 여기 택시 많아요. 나가면 바로 탈 수 있을 거예요.”
고준성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알아서 해요.”
그는 잠시 멈추더니 약간 서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엔 이런 일 없었으면 해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가 이런 걸 신경 쓰는 게 의외였다. 그래도 나는 일단 빠르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
고준성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몸을 돌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서 아직 처리할 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하지훈이 고청하를 감싸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미소 지었다. 지금은 빨리 이 도시를 떠나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와중에 애를 원한다고? 어림도 없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직 평평한 배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짐은 정리되지 않고 방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밖에는 가을비가 연이어 내리고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의 일에 이어서, 병원에서 겪었던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는 가슴이 찌릿했다.
하지훈이 고청하를 좋아하고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고청하 때문에 나를 탓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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