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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장

나는 약을 슬쩍 뒤로 감추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몸이 좀 허해서 영양제 받으러 왔어요.” “아하...” 고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은요? 여기서 뭐 하세요? 촬영팀 지금 바쁘잖아요.” 그는 이번 작품의 남주인공이니 한창 바쁠 때 아닌가 싶었다. 조연인 조유라도 매일 새벽같이 촬영장에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준성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바빠요. 하지만 오늘은 대역 배우한테 맡기고 친구를 만나러 왔어요.” “친구요?” “네.” 그는 방금 대화를 나누던 의사를 가리켰다. “제 친구 이 병원 원장 아들이에요. 실력도 좋아서 대부분 병은 다 볼 수 있어요. 어디 불편하면 상담해도 돼요.” “아, 의사 친구가 있으셨어요?” 나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 이래 봬도 의대 출신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놀라서 물었다. “의대 나와서 어떻게 배우가 된 거예요?” 고준성은 마스크와 모자를 써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눈빛이 조금 묘해 보였다. 한참 후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원래는 의대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예술 쪽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의대에 갔어요.” “아...”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지금은 가족분이 괜찮아지셨나요?” 고준성은 말을 잃었다. 눈빛도 이상하게 변했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그 사람...’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며 웃었다. “배우도 대표님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인기 많은 걸 보면 대표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저랑 똑같이 생각할 거예요.” “그래요?” 고준성은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그럼 아영 씨도 좋아해?” 나는 순간 당황해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죠. 예술 전공을 했으니까, 잘생기고 연기까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러고 보니 하 대표님도 예대 출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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