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9장

얼마 전 혼미상태에서 갓 깨어났을 때에도 똑같은 물음을 물어보았는데, 그때의 서정희는 길 잃은 양처럼 말하는 것도 쭈뼛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온몸으로 자신감을 뿜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내밀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싫어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결혼할 사람은 어머님이 아니니까.” 말을 끝내고는 성큼성큼 음식점을 나갔다. 염정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빠졌다. 아이와 가족이 없으면 서정희는 이렇게 소탈한 사람이었다. 비행기에서 충분한 수면을 보충해서인지 그녀는 새로운 곳에 오니 기분도 좋아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앞에서 퐁퐁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소녀 같았다. 예전의 침울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특산품 가게 앞에서 갑자기 멈춰서더니 염정훈을 시켜 특산도 좀 샀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조영철은 조급해났다. 하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다. 서정희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오니 이렇게 즐거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서정희는 과거에 자신이 많이 억눌려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염정훈이 특산품을 사주면 그녀는 다른 가게로 또 들어갔다. 한 손 가득 선물을 사들고 나와서 계산하다가 한 사람과 부딪히자 손에 들었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귓가에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괜찮아요.” 서정희는 허리를 굽혀 줍으면서 답했다. 두 사람이 동일한 물건을 줍을 때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러자 임성결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어렸다. “정희야, 여기에서 만날 줄 몰랐네. 병은 다 나았어요?” 서정희는 망연하게 임성결을 쳐다봤다. “당신은......” 병? 언제 병 걸렸어? 그녀가 묻기도 전에 여자 한 명이 뛰어오더니 임성결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임선생님 빨리 가요. 검표를 시작할 텐데 여기서 뭐해요?” 그러자 임성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없네. 다음번에 다시 얘기 나눠. 건강이 좋아진 걸 보니 시름이 놓이네. 정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