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8장

십 여 시간의 기나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드디어 공항에 안전히 착륙했다. 서정희는 안대를 벗더니 기지개를 켜면서 굳은 손발을 움직였다. X국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지역이기에 A시와 기온이 반대였다. A시는 지금 큰눈이 흩날리고 있지만, X국은 봄날씨였다. 바닷바람에 맑은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서정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VIP통로에는 이미 정장 차림을 한 조영철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는 서정희를 아래위로 훑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정희 씨도 고생 많았어요.” 서정희는 중년 남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여자의 예감은 대부분 맞았다. 이 사람은 자신을 싫어한다. 물론 서정희도 그걸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까닥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염정훈의 차가운 눈빛이 남자를 째려보았다. “눈이 멀었어? 그럼 각막 수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자 조영철은 모골이 송연해서 연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이때 뒤에서 진상정이 농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조 집사님, 분명 사전에 미리 말했을 텐데, 진짜 몰라본 거예요? 아니면 몰라본 척 한 거예요? 정희 씨라고요? 허.” “가자.” 진영은 진상정의 곁을 지나가면서 쓸데없이 일을 만들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조영철을 지날 때 진영은 아예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영철의 배후에는 큰 사모님이 있었다. 큰 사모님이 서정희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염정훈은 빠르게 쫓아가서 서정희의 손을 잡으면서 해명했다. “예전에는 내가 결혼 사실을 숨겨서 저 사람은 당신을 몰라.” “그럼 지금 알게 됐네.” 서정희는 속으로 상황이 추정됐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시어머니가 나를 싫어하나 보네. 염정훈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음식점을 찾아서 주문을 했다. 아예 조영철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서정희는 이미 이런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