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7장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정희는 자신이 마치 득도한 고승마냥 세속에 대해 욕망이 없고,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어진 것 같았다. 염정훈이 가서 의학을 배우라고 하면 좋다라고 답했다.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의학을 배워도 되고, 경영을 배워도 됐다. 염정훈은 그녀의 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귓불을 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정희야, 나는 당신과 달라. 내 눈과 마음에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온통 당신뿐이야.” 염정훈은 나갈 준비를 마치고, 서정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위풍당당하게 집문을 나섰다. 서정희는 품에 모찌를 안고, 무표정으로 그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는 염정훈을 배척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도 별로 없었다. 곧 A시를 떠나게 되네. 이곳에 아무런 미련이 없군. A시에서의 남은 나날에 염정훈은 날이 밝기도 전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제때에 돌아와서 그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밥 먹고 나서는 그녀와 함께 영화를 봤다. 테이블 위의 생화는 하루에 한 번씩 바뀌었고, 반지는 염정훈의 손에서 벗겨진 적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온통 서정희에 대한 사랑이었다. A시를 떠나기 전날, 염정훈은 서정희를 품에 안고 물었다. “정희야,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이번에 해외로 나가면 오랫동안 못 올지도 몰라.” 서정희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없어.” 분명 염정훈이 원했던 답이지만,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애써 불길한 예감을 내쫓고는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다 잘 될 거야. 몇 년 후 서정희가 그곳의 생활을 즐기게 되면 위험이 해소되고, 한 가족이 다시 상봉하는 날이 올 거야. A시를 떠나는 날, 큰 눈이 내렸다.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잘 지내요.” “사모님도 스스로를 잘 돌보시고요.” 아주머니는 서정희의 손을 꼭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도련님과 행복하세요.” “네.” 차가 시